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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칼럼]화장실에서 밥을 먹는 대학생들

입력 | 2015-03-30 03:00:00

친구가 없다는 사실 감추려 日대학생들, 화장실서 식사
한국 대학가에도 ‘혼밥족’과 ‘나홀로용 식당’이 느는 건
인간관계 붕괴의 적신호
가장 큰 원인은 극심한 취업난… 친구조차 적인 청년들에게
정부, 대학, 기업, 노동계가 큰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으로
위기감부터 공유해야 할 때




심규선 대기자

1월에 일본의 한 유명 대학 교수로부터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화장실에 ‘화장실에서 밥을 먹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이어서 ‘설마, 그럴 리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이유를 물으니 ‘친구 없이 혼자서 밥 먹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가 아닐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 한국의 대학가에도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혼자서 밥 먹는 데 편리한 식당이 늘고 있다는 소식에 일본 교수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에게 일본의 사정을 좀 더 자세히 물어봤다.

“일본에서는 5년 전부터 ‘벤조메시(便所飯·변소밥)’라는 게 화제가 됐다. 발단은 2009년 7월 6일자 아사히신문 석간의 1면 톱기사. 이 기사는 도쿄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에 ‘변소밥’을 금지하는 벽보가 붙었는데, 대학 당국은 붙인 적이 없다고 하는 기묘한 사실을 보도했다. 그 후 소수이긴 하나 화장실에서 식사를 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여러 차례 보도됐다. 한 정신과 의사는 ‘런치메이트 증후군’이라고 말을 만들었는데, ‘변소밥’을 그중 하나로 보고 있다.”

한국에서도 오래 근무한 적이 있는 그는 일본은 ‘나 홀로 식사’에 익숙한 나라인데 한국은 혼자서 밥 먹는 게 더 힘든 나라가 아니냐, 한국에도 ‘변소밥’이나 ‘런치메이트 증후군’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마침 지난주에 ‘언론을 통한 세상보기’라는 특강 시간에 400여 명의 대학생 앞에 설 기회가 있었다. 강의가 끝날 무렵, 앞에 언급된 아사히신문 기사를 큰 화면으로 보여주고 물어봤다. “혹시 화장실에서 밥을 먹어봤거나, 그런 사실을 들은 적이 있나.” 직접 경험자는 없었으나 한 학생의 대답이 귀에 들어왔다. 그는 “화장실에서 먹을 것이니 소리가 나지 않게 단무지는 빼고 김밥을 싸 달라고 하는 친구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시점은 올해. 화장실에서 밥을 먹은 경험은, 있다고 해도 선뜻 인정할 게 못 된다. 그런 점에서 비록 ‘전언’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 대학생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다만, 일본과 한국 대학생이 혼자 밥을 먹는 이유에는 차이가 있다. 일본의 ‘변소밥’은 그 이유를 친구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힐지도 모른다는 공포나 불안감, 스트레스에서 찾고 있다.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 그러나 한국은 취업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이 깊다. 취업전쟁 학점전쟁 스펙전쟁에서는 친구도 적이고, 느긋이 밥 먹을 시간도 없다 보니 차라리 혼자 먹는 게 편하다는 것이다. 취업한파가 인간관계까지 파괴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청년들의 글과 행동을 보면 취업난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고 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내가 못나서 취직을 못하는 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가 원천적으로 부족하고, 그마저도 기득권 세력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이라는 단체가 최근 민주노총 앞에서 ‘형님들! 삼촌들! 일자리 세습 그만두고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나누어 주세요’라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게 상징적이다. ‘청춘이라고 쓰고 절망이라고 읽는다’는 말도 있지만, 젊은이들이 절망에서 발견한 무기는 자책이나 순응이 아니라 불만표출과 집단행동인 듯하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심각한 세대갈등으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대학은 대학 전체로 승부하려 하지 말고 특성 학과 중심, 쓸모 있는 실무 중심, 지역을 살리는 커뮤니티 중심 교육으로 대개편을 하고 그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교수들은 제자들을 자신들의 밥벌이 수단으로만 여기지 말고 학생들도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교육 내용과 방법에 궁리에 궁리를 더해야 한다. 정부는 부실 대학을 과감히 정리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학을 교육과 연구, 취업 준비가 공존하는 곳으로 정상화해야 한다. 기업과 노동계는 취업준비생들만 탓하지 말고 일자리를 만들고 나누는데 이기적이지 않은지 먼저 자성해야 한다.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추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누가 어디서 이런 큰 그림을 놓고 고민을 하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답답하다. 위기감조차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게 더 큰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대학생들이 광장으로 나아가지 않고 화장실로 들어가 밥을 먹고 싶어 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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