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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 키즈 이후 20년 뒤가 걱정” 정치민주화 숙제 떠안은 싱가포르

입력 | 2015-03-31 03:00:00

[포스트 리콴유, 싱가포르의 고민]
기로에 선 ‘경찰국가’




싱가포르 사람에게 “리콴유 전 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은 없느냐”는 질문을 던지면 10명 중 9명은 “없다”고 답한다. 리 전 총리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대해 “경제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싱가포르는 작은 나라여서 리더십을 흔들면 망한다”며 이해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싱가포르의 권위주의 통치는 널리 알려져 있다. 곳곳에 사복경찰이 돌아다니고 폐쇄회로(CC)TV가 촘촘히 설치돼 있다. 한 싱가포르인은 “주변에 감시 카메라가 보이지 않아 담배를 피웠는데 누군가 다가와 벌금을 물렸다. 사복경찰이었다”고 말했다.

언론 통제도 엄격하다. 헌법상 언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하위 법인 국가안보법에서 민감한 주제나 조화를 해치는 토론을 금지하고 있다. 난양이공대(NTU) 언론학과 앙펑화 교수는 “언론은 모두 국가 소유이며 인터넷에 대한 검열법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30일 리 전 총리를 비판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애머스 이(17)가 선동방지법을 위반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마침내 리콴유가 죽었다’라는 제목의 8분짜리 동영상에서 “리콴유는 지독한 독재자였지만 자신을 민주적인 인물로 여기도록 사람들을 속여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토론 사이트인 ‘온라인시티즌’의 게시 글에는 “리 전 총리의 유산에 대해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반박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교육도 통치에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3년 전 싱가포르에 온 한 교민은 “싱가포르는 초등학생에게 태형 집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여 주고, 중학교 때부터 리 전 총리의 업적을 부각시킨 싱가포르 근대사를 가르친다. 자연스럽게 국가에 대한 자부심, 복종 의식 등을 심는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권위주의 통치는 이제 변화의 시점을 맞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키쇼어 마부바니 전 유엔 주재 싱가포르대사는 25일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는 그동안의 성장에 감사하지만 새로운 정치적 분위기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민심의 변화를 반영하듯 2011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은 역대 최저인 60.1%를 얻는 데 그쳤다. 이에 리셴룽 총리는 국민의 의견을 자주 듣는 등 ‘대화의 리더십’을 추구하고 있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게리 청 씨(48)는 “리 총리 등 ‘리콴유 키즈’들이 싱가포르를 주도할 향후 20년은 걱정이 없다. 문제는 그 후”라며 “다양한 정치적 요구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가 싱가포르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NYT는 “싱가포르가 중요한 지점에 서 있다. 경제 모델뿐 아니라 정치 모델에서도 민주화를 이뤄야 할 때”라고 전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