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를 두고 눈으로 흠모하는 모더니스트 회화가 있다. 예컨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들 수 있다. 첫눈에 반해 빠져드는 신비로운 사랑의 감정이기에 아름답고 숭고하다. 이에 비해 이리저리 둘러보고 몸으로 느끼는 작업도 있다. 주로 최근 자주 접하는 설치작업인데, 작품은 그 재질과 크기를 느껴주길 원하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공간의 감각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런 포스트모던 작품은 대체로 볼 게 별로 없다. 예쁘지도 않고 심지어 혐오스러운 것도 있다. 신경이 너무 쓰여 없애버리고 싶기도 하다.
대중에게 미움을 받아 없어진 작품이 있다. 뉴욕 맨해튼의 연방 플라자 공간에 설치되었던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Tilted Arc)’(1981년·그림)이다. 길이 36m, 높이 3.6m의 강철판을 광장을 가로질러 설치한 작업이다. 분주한 도시의 일상 공간에 대담하게 설치해 공공미술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작가는 법정에서 “작품을 그 설치된 장소에서 제거하는 것은 그것을 파괴하는 행위다”라는 유명한 주장을 폈다. 현대미술의 주요 화두인 ‘장소 특정성(site specificity)’이란 개념을 각인시킨 말이다. 세라의 설치작업은 장소와의 관계, 그리고 공간의 지각이 중요하다. 오늘날 설치작업을 관람할 때 작품과 전시공간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은 거의 상식이다. 이러한 인식에 기여한 일등 공신이 바로 세라이고 그의 ‘기울어진 호’다.
당시 미국 사회뿐 아니라 미술계에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기울어진 호’는 미술사에 길이 남는 중요한 작업이 돼 있다. 남아있지 않기에 더 기억되는, 부재로 인해 그 존재가 더욱 부각되는 작업이다. 대중의 취향에 맞지 않아 사라진 작품. 미움이란 사랑의 반대가 아니라 그 뒷면이란 말이 맞는가 보다.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미술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