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95주년][2020 행복원정대/엄마에게 날개를]<1>엄마는 고달프다 100인 심층 인터뷰
중학교 1학년생 아들과 돌 지난 딸을 키우는 최모 씨(41)는 “‘엄마’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이라는 질문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딸을 낳은 뒤 육아휴직 중이다. 터울이 많이 나는 자녀를 키우면서 10여 년 전 육아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다시 경험하고 있다.
같은 질문을 받은 ‘남편’의 얼굴은 밝아졌다. 정보기술(IT) 기업 임원으로 재직 중인 김모 씨(39)는 엄마(그에게는 아내)라는 존재를 “올드 빈티지 와인”이라고 했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가치와 향이 풍부해지는 존재가 엄마인 것 같다”며 “환경에 따라 가치가 크게 달라지는 점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고마운 동반자이자 아이들 성장 프로젝트의 공동 책임자죠.”
엄마들의 답변 중엔 집사, 잔소리 대장, 독재자처럼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가 많았다. 엄마를 ‘밥’으로 정의한 직장맘 김모 씨(33)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 늘 먹어야 하고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애들한테 깨지고, 남편한테 깨지고, 회사에선 불성실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회사 중견 간부인 김모 씨(52)는 ‘엄마는 동네북’이라고 했다. “가족들은 무조건 엄마 탓만 해요. 심지어 아이들은 ‘왜 나를 더 예쁘고 똑똑하게 낳아주지 않았느냐’ ‘돈도 없으면서 왜 서울 강남으로 이사와 친구들과 비교당하게 하느냐’고 따지죠.”
이 밖에 ‘신입사원’(열심히 하는데 칭찬보다는 지적을 더 많이 받아서), ‘감초 배우’(어디든 꼭 끼어 맛을 내지만 주인공은 아니므로), ‘트랜스포머’(나들이할 때와 집에서 아이에게 젖 물릴 때 모습이 너무 달라서), ‘하숙생’(하숙생이 주인 보듯 아이들을 힐끗 보고 출근하고 퇴근한 뒤에도 힐끗 보면 그만이라며)처럼 자조적인 응답도 있었다.
반면 남편들이 ‘엄마’(아내)에게서 떠올린 단어들은 동반자, 내비게이션, 오아시스 등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공무원 김모 씨(55)는 “친구이자 안식처”라고 답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대화가 잘 통하니 친구 같고, 사회생활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고 따뜻하게 품어줘서 안식처 같습니다.”
10, 20대 자녀들의 ‘엄마’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았다. “엄마는 전부다” “엄마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라는 답변이 나왔다. 여대생 박모 씨(27)는 “엄마는 다른 어떤 말로도 대체할 수 없는 ‘우리 엄마’”라며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이자 가족에게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강모 씨는 엄마를 ‘거울’로 정의했다. “내가 엄마를 많이 닮았어요. 엄마의 성격이나 행동을 보고 배웁니다. 나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아요.”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