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95주년][통일코리아 3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받는 탈북민에서 주는 탈북민으로]<上>자원봉사로 편견을 넘다
부산 사하구 다대1동 38통 통장인 원정옥 씨(오른쪽) 등 탈북민들과 이 지역 주민들이 지난달 28일 다대1동의 한 주택에서 인근 홀몸노인과 장애인 등 소외된 이웃에게 나눠줄 도시락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이날 봉사활동에는 이 지역 탈북민들을 관할하는 부산사하경찰서 우성윤 경위(왼쪽에서 세 번째)도 동참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 탈북민 여성은 얼굴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부산=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이거 누가 주는 겁니까?”
“탈북민들이 드리는 겁니다….”
도시락을 받으려던 노인이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울컥했다. 눈물이 나왔다.
2012년 12월 탈북민으로 구성된 파랑새봉사단을 만들어 부산 사하구의 홀몸노인, 장애인들에게 도시락을 전해 주는 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봉사단장 원정옥 씨(45)는 한참을 닫힌 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생활이 힘든 사람들조차 북한 사람들은 굶어 죽고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부산 사하구 다대1동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원 씨는 봉사활동을 시작한 뒤 꽤 오랫동안 도시락을 전해 주면서도 자신이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2013년 어느 날, 도시락을 전할 때마다 밝은 모습으로 원 씨를 맞아 주던 한 1급 장애인에게 용기를 내어 말했다.
“실은 제가 탈북민이에요….”
“말투가 달라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탈북민이면 어때요. 나를 위해 찾아와 줬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죠.”
지난달 28일 만난 원 씨는 “그때 들었던 말이 큰 깨달음을 줬다”고 했다. 집집마다 찾아가 도시락을 전하며 자신이 탈북민이라고 밝혔다. 놀랍게도 모두가 반겨 주었다.
“커피 한잔하고 가라는 분, 아버지가 실향민이라며 얘기를 걸어 오는 분, 배 하나를 주머니에 넣어 주는 분까지 있었어요.”
그제야 원 씨는 알게 됐다. 한두 사람이 거부했다고 사람들 모두 탈북민인 내게 편견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편견이라는 것을.
평안북도 박천군에서 태어난 원 씨는 2008년 탈북했다. 한국에 정착해 다니던 회사에서 2012년 상사에게서 폭행을 당해 어깨를 다쳤지만 회사는 원 씨를 내쫓았다. 이때부터 원 씨는 우울증 때문에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원 씨는 새로운 일을 찾았다. 2012년 6월 다대1동 38통 통장 선거에서 당선됐다. 탈북민 최초의 통장이었다. 처음에는 “할 사람이 없어 탈북민을 통장 시켰느냐”는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원 씨가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던 임대아파트 앞을 화단으로 바꾸고 고성방가와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주정, 이웃 간 폭행을 대화로 해결하자 주민들도 마음을 열었다. 진심으로 주민들의 말을 들어줬더니 그들도 마음을 털어놓았다.
원 씨는 “사회에 베풀면서 사람들을 알아 가니 지역공동체와 더불어 산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올해 사회복지 학사 학위를 받은 그는 마을공동체 개념의 사회적 기업을 꿈꾸며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 “따끈한 도시락 건넬 때마다 내 마음도 따뜻” ▼
2008년 南에 온 간호조무사 김옥화씨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일하는 나흘의 낮 생활은 남들과 사뭇 다르다. 퇴근해 집에 돌아온 뒤 제대로 쉴 틈도 없이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인근 YWCA복지관에서 홀몸노인들을 돕는 봉사활동에 나선다. 그가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9년 어느 날이었다.
“2008년 한국에 왔습니다. 간호사 준비를 위해 공부하던 시절, 제가 살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도시락을 나르는 젊은 대학생들을 만났어요. 도시락 회사에 근무하는 줄 알았죠.”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아파트의 홀몸노인들에게 도시락을 전해 주는 봉사를 하고 있었다. 김 씨가 “회사처럼 면접을 보고 들어가야 할 수 있는 일이냐”고 물었더니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의 정착을 도왔던 도우미들도 봉사자였다.
“아, 나도 그들처럼 남을 돕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2010년 간호조무사로 취직한 뒤 한참을 바쁘게 지내던 그는 2013년 10월부터 봉사활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때부터 꾸준하게 홀몸노인들을 위한 반찬을 만들고 도시락을 배달하는 봉사를 해 오고 있다. 체력이 감당하기 힘들 때도 많다는 김 씨. ‘격무로 힘들 텐데 왜 봉사를 하느냐’고 물었다.
“냉방에서 병으로 고생하는 어르신들의 손이 제가 건넨 따끈한 도시락으로 따뜻해질 때면 저도 같이 행복해집니다.”
부산=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