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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박인호의 전원생활 가이드]낭만적 귀촌 꿈꾸는 당신에게

입력 | 2015-04-01 03:00:00


귀촌은 낭만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다. 강원도 홍천귀농·귀촌협의회 회원들이 모임을 갖고 있다. 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가히 귀촌 열풍이라 할 만하다. 각박하고 치열한 경쟁에 지친 도시민들이 새로운 인생 2막의 터로 전원(농촌)을 택하면서 귀촌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14년 귀농·귀촌 관련 통계를 보면 귀농·귀촌 인구는 2013년(3만2424가구)보다 37.5% 늘어난 4만4586가구에 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농사를 주업으로 삼지 않는 귀촌인구는 55.5%나 폭증한 3만3442가구로 전체 귀농·귀촌인구의 75%를 차지했다.

귀촌인구 비중은 2012년 58%, 2013년 66%, 2014년 75%로 매년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사실상 귀촌이지만 각종 귀농 지원을 받을 목적으로 소규모 농지를 확보해 귀농으로 위장한(?) ‘짝퉁 귀농인’까지 더한다면 그야말로 귀촌은 압도적이다.

이번 발표를 통해 정부가 그동안 귀농 일변도의 지원정책에서 벗어나 귀촌인 정착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본보 1월 14일자 A28면 ‘귀농·귀촌 정책, 귀촌 주도의 6차 산업화로 방향 틀 때’ 참조)

2014년 귀농·귀촌 통계에서 보듯 귀촌 열풍이 거센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농어촌 지방자치단체마다 도시민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어 이 과정에서 혹 거품이 끼지나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근래 들어선 ‘2020년 귀농·귀촌 100만 시대’ 등의 현란한 문구를 내세워 귀농·귀촌 열풍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어 우려스럽다.

필자가 농촌 이주 흐름의 대세로 자리 잡은 귀촌 열풍에 대해 경계하는 것은 ‘너도 가니 나도 간다’는 식의 무분별한 전원행을 부추기지나 않을까 걱정되어서다. 도시민들이 귀촌을 너무 쉽게 생각해 치밀한 계획과 준비 없이 이를 결행하게 되면 시골 정착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막상 귀촌생활을 시작했지만 소득문제, 자녀교육, 원주민 텃세 등의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좌절을 맛본 이들이 적지 않다. 정부는 농촌 이주 2∼3년 내 도시로 돌아간 역귀농·역귀촌 비율이 1.9%에 불과하다고 밝혔지만, 농촌생활 6년 차인 필자가 느끼는 체감 현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수도권 인근 A군의 귀농·귀촌 담당자는 “2013년 한 해 귀농·귀촌한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보니 1년도 채 안되어 돌아간 역귀촌이 13%에 달했다”고 전했다.

처음 이주한 농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지자체로 옮겨 가는 ‘철새 귀농·귀촌인’이 8.8%로 역귀농·역귀촌보다 4배 이상 많다는 조사결과 또한 시사점이 크다. 그만큼 준비 안 된 전원행을 강행했다는 방증이다.

귀촌을 하면 누구나 오롯이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오히려 일자리를 구하거나 펜션, 가공판매, 음식점, 체험·관광시설 등 귀촌 창업을 통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귀촌인이 태반이다. 일단 귀촌한 후 2, 3년 지나 귀농을 접목해 6차 산업에 도전하는 이들도 많다.

블루오션으로 여기고 뛰어드는 귀촌 창업 분야에서는 이미 치열한 서바이벌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2012∼2014년 3년 새 귀농·귀촌한 인구는 무려 10만4018가구이며, 그중 귀촌이 7만731가구(68%)나 된다. 앞으로도 한동안 귀촌행렬이 이어질 것을 감안하면 향후 6차 산업 등 귀촌 창업의 영역에서 귀촌인끼리의 생존 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귀촌의 현실은 이렇다. 결국 귀촌은 유행에 따른 즉흥적 낭만적 결정이 아니라 인생 2막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 끝에 선택한 결론이어야 한다. 그 길은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자발적인 가난’을 받아들이고 자연을 벗 삼아 안분지족하면서 사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도시 못지않은 치열한 경쟁을 감내하며 성공을 추구하는 길이다.

가끔 필자를 찾아오는 친구나 지인들은 한결같이 “나도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며 조언을 구한다. ‘전원 전도사’를 자임하는 필자지만 열 명 중 아홉 명꼴로 일단 만류한다. 왜냐하면 어느 길을 선택해 어떻게 걸어갈 것인지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원생활은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다. 귀촌을 꿈꾸는 당신이 그 소망을 이루고자 한다면 정확한 현실인식부터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