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3월 중순 제주 서귀포에서 가장 먼저 망울을 터뜨린 개나리가 차츰 밀고 올라오더니 지금은 서울에서도 흐드러지게 핀다. 남부지방에서는 벚꽃도 이미 푸지게 피었다. 이제 곧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방에서도 벚꽃이 절정에 이를 모양새다.
사철 중 꽃이 안 피는 계절이야 없지만, 그래도 ‘꽃 하면 봄이고, 봄 하면 꽃’이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이고, 윤승희의 ‘제비처럼’도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아닌가.
4월 중순이면 내장산 백양계곡 일대에서 피나물을, 설악산 백담사 일대에서는 자주색 처녀치마를 볼 수 있고 4월 말 무렵엔 월출산 무위사 자연관찰로에서 할미꽃, 속리산 세심정 근처에서 노랑제비꽃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공단이 꽃구경하기에 좋은 때와 장소를 탐방객들에게 알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봄꽃 보러 많이 오세요∼’ 하는 그런 뜻이 아니다. 이렇게 알리지 않아도 봄에는 공원 탐방객이 차고 넘친다. 그럼 봄꽃 개화 시기와 장소를 알린 이유가 뭘까? 소개한 장소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짐작이 간다. 국립공원 내 봄꽃 군락지로 소개한 60여 곳 대부분이 낮은 지대에 있다. 봄꽃이 저지대에서만 필 리는 없는데….
소개된 곳 대부분이 저지대인 데는 다 사정이 있다. 등산객 대부분이 정상(頂上)까지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허리도 산이고, 산자락도 산인데, 어쩌다 그리 됐는지 기를 쓰고 꼭대기까지 밟고 내려와야 등산을 제대로 한 걸로 여기는 이상한 산행 문화가 깊게 배었다는 것. 공단이 등산객들에게 물었더니 북한산에서는 열에 여덟, 계룡산에서는 열에 일곱이 정상까지 갔다 오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고봉이 해발 1915m(천왕봉)나 되는 지리산과 1708m(대청봉)인 설악산에서도 둘 중 한 명은 정상을 찍고 내려왔다. 정상(향적봉·1614m) 바로 턱밑인 설천봉(1520m)까지 곤돌라가 다니는 덕유산은 정상 탐방 등산객 비율이 90%를 넘는다. 이 경우는 등산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이러다 보니 “등산객이 몰리는 주말에는 산 정상부에 탐방 압력이 가중되고 훼손 우려도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게 공단 측의 설명이다. 공단은 “봄꽃 군락지 훼손을 감수하면서까지 개화 시기와 장소를 알린 건 저지대 위주의 수평탐방을 유도해 정상 정복에 치우친 탐방 행태를 조금이나마 바꿔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런 바람대로 저지대 봄꽃 감상에 넉넉히 만족하고 산 아래로 발길을 돌리는 탐방객들이 많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고 꽃은 꽃대로 시달리고, 정상은 정상대로 부대끼면 낭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