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와 함께하는 ‘이야기가 있는 숲 길’] 소설가 서영은 강원도 양양 구룡령 옛길 트레킹
소설가 서영은 씨가 구룡령 옛길의 숲에 서 있다. 서 씨는 “꽃이 피어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가 떨어져 썩은 뒤 씨앗이 되고 그 씨앗이 다시 꽃이 되는 것처럼 아름다움과 고통은 공존하고 순환한다”고 보고 있다. 구불구불 굴곡진 인생과도 닮은 구룡령 옛길에서 넘어지기도 했지만 서 씨는 웃으며 걸었다. 양양=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강원 양양군 서면 갈천리의 구룡령 옛길은 서 씨의 인생 여정과 닮았다. 강원 홍천군 내면에서 양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갯길인 구룡령 옛길은 서 씨가 말하는 사막처럼 오랫동안 인적이 끊겼다가 복원되었다. 뛰어난 경관을 지닌 이 길은 2007년 대한민국 명승 제29호로 지정되었다. 아직도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이다. 여름이면 곳곳에 뻗은 나무 그늘이 깊고 야생화가 가득한 곳이다. 구불구불 하늘로 치솟을 것만 같은 길이 9마리 용을 닮았다고 해서 구룡령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4.5km의 호젓한 길이다.
남편을 떠나보낸 지 20년. 서 씨는 홀로 인생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백내장으로 수술까지 한 뒤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상실한 서 씨지만 지난달 24일 함께한 구룡령 옛길 걷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서영은 씨(왼쪽)와 서 씨의 절친한 후배인 연극배우 윤석화 씨(가운데),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구룡령 옛길에서 포즈를 취했다.
“생명이 피어날 때의 기운이 느껴져요.”
서 씨는 본능적으로 봄 냄새를 맡았다. 구룡령길 초입에서 마주친 ‘채 꽃이 피기 직전’의 풍경에 대한 기억을 다음 작품에 주저 없이 넣기로 했다.
서 씨는 2009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40일간 걸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서 씨는 “하루에 30km씩 1200km를 걸었는데 그때 기분처럼 땅을 읽는 것 같다”고 했다. 서 씨는 당시 길을 걸으며 외롭더라도 작가로서의 일생을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글을 쓰는 일과 관계없는 일은 사치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고 한다.
구룡령 옛길에서 서 씨는 “고향 길 같다”는 말을 반복했다. 서 씨의 고향은 강원 강릉이다. 구룡령을 반긴 또 다른 이유다. “강원도는 산세도 험하고 야성미가 넘치죠. 제가 강원도를 닮았나 봐요.”
서 씨가 1975년에 발표한 소설 ‘사막을 건너는 법’은 본인 스스로 “인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평가하는 작품이다. 군인으로 베트남전쟁에 파견됐다가 돌아온 남자 주인공이 삶에 대한 극도의 허무를 겪는 모습과 그 허무의 극복을 그린 작품이다. 서 씨는 “이전에는 삶에 대한 나의 철학을 날것으로 풀어냈다면 이 작품부터는 경험을 이야기 속에 풀어내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말했다.
낯선 경험들은 서 씨에게 등장인물의 세밀한 심리 및 상황 묘사를 통해 글을 살찌우는 귀중한 재료다. 1990년 연암문학상 수상작인 ‘사다리가 놓인 창’에서 여주인공은 남성 중심의 사회질서로 인해 가정과 일에서 희생양이 됐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 여주인공은 ‘매실장아찌를 한 입에 삼키는 짓은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고통을 더는 참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적극적인 삶을 살겠다는 결의의 표현이다. 이 표현에도 서 씨의 특별한 경험이 묻어 들어갔다.
“한국에 온 외국 대사님과 일식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대사님이 매실처럼 동그랗게 담긴 겨자를 뭔지도 모르면서 한입에 넣더라고요. 너무 매울 텐데도 뱉지 않는 모습이 정말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어요. 남들 모르게 참고 있는 거잖아요. 주인공이 처한 심리적 상황과 잘 어울리겠다 싶었죠.”
○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아 상실감이 더 컸다
서 씨는 김동리 선생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온 48년의 세월을 무덤덤하게 써 내려갔다고 했다. 서 씨는 “나의 유일했던 사랑에 대해서도 시간이 지나니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겠더라”고 했다. 그렇다고 애달프고 소중한 감정이 통째로 사라진 건 아니다.
“어린 나이에 김동리 선생님과 연애를 시작했는데 다른 남자는 남자로 보이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죠. 진짜 ‘남자’셨어요.”
그래서 단지 ‘사랑한다’는 말로 그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생전에도 사랑의 말보다 더 마음 저리는 표현으로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절대로 너를 놓치지 않겠다는 나 자신의 의지를 보여 줬던 것 같아요.”
김동리 선생의 첫인상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또렷해진다고 했다. 서 씨는 “어른이었다”고 주저 없이 말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 서 씨는 “최근 한 설문조사를 보니 배우자를 잃었을 때 슬픔이 가장 크다고 하더라”며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눈물은 결코 마르는 법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구룡령 옛길 내리막 코스의 백미는 금강송 군락이다. 그중에서도 1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가지가 이리저리 구부러진 낙락장송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웅장하다. 금강송들이 제법 모여 있는 자생지인 ‘솔반쟁이’가 깊은숨을 들이마시게 한다. 멀쩡한 금강송 사이로 군데군데 밑동만 남은 소나무의 나이테들이 파란 이끼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1989년 경복궁 복원 당시 사용된 금강송이 잘려 나간 흔적이라고 한다.
서 씨는 마치 짝을 잃고 상처를 입었던 자신을 보듯 잘린 금강송을 쳐다봤다. 김동리 선생이 작고한 뒤 더 큰 소중함을 알았다고 했다.
“사람 인(人)자는 두 사람이 서로 지지하고 있는 부부를 의미할 수도 있다고 봐요. 지지대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하나도 무너질 수 있는 게 부부 관계 아니겠어요? 더구나 전 선생님에게 의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실감이 더 큰 것 같아요. 의지하지 않으려고 힘을 주고 있는데 지지대가 무너지니 더 세게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이제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의 사랑을 되돌아보면서 그 사랑의 한 짝이었던 김동리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는 서 씨다.
“선생님 작품 ‘황토기’를 보면, ‘억쇠’와 ‘덕보’가 대립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둘이 만나 격투를 벌이면서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죠.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인해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김동리로 인해 ‘서영은’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서 씨의 본명은 서보영이다. 지금의 이름은 필명이다. 서른 살이나 어린 20대 중반의 서 씨를 만난 김동리 선생은 자신의 문학전집 첫 장에 ‘일심영원(一心永遠)’이라는 휘호를 담아 건넸다. ‘영원’에서 필명 ‘영은(永恩)’이 생겨났다고 했다. 이 마음의 징표 하나로 서 씨는 “세상 어떤 굴욕이 와도 감당하고 담을 수 있겠다는 내 안의 ‘품’이 생겼다”고 했다.
○ 희생의 소중함 알리겠다
구룡령 옛길 내리막의 막바지에 이르면 박달나무 한 그루가 손님을 맞는다. 이미 나무의 절반은 죽어서 색이 검다. 하지만 다른 반쪽에서 튼튼하게 줄기가 나고 뻗어 곧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 생명력이 돋보인다.
서 씨에게 인생이나 자연은 아름다움과 고통이 공존하는 순환의 세계다. 박달나무는 죽음과 생명력을 함께 품고 있다. 서 씨는 “우리가 꽃을 아름다움에만 비유하는데, 열매가 열린 뒤 그 열매가 썩어 떨어지는 아픔을 겪고 다시 씨앗으로 변해 꽃이 핀다. 사계절의 과정 속에서 꽃을 이해할 때 진정한 의미가 완성된다”고 말했다.
인생도 같다고 본다. 서 씨는 “갈채를 받을 때가 제일 아플 수 있는 게 인생이다. 화려함은 그래서 무의미할 수도 있다. 이 점을 깨달으면 남의 삶을 이해하고, 남의 삶이 보이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서 씨는 지난해 출간한 ‘꽃들은 어디로 갔나’라는 작품에 이어 펴낼 새 작품에서는 ‘열매’와 ‘씨앗’이 되어 보기도 했던 자신의 경험을 담을 것이라고 했다.
서 씨에게 있어서 작가로서의 삶은 운명이었음을 구룡령 옛길에서 재확인했다. “글 쓰는 걸 직업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 운명입니다. 아픔이나 외로움이 다가오더라도 이제부터 제대로 가 보련다”고 의지를 다졌다.
구룡령 옛길 내리막 끝자락에 와서 서 씨는 다리가 풀려 부축을 받았다. “정말 처절하게 길이 자신을 갈아엎었다”며 절뚝였다. 하지만 연신 얼굴에서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언젠가부터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할 때면 긍정적인 답을 내놓게 됐어요. 나보다 자식이 우선이었던 우리 어머니들의 삶을 보더라도 ‘왜 저렇게 사나’라고 의문을 갖기도 했지만 그 희생이 다른 삶의 뿌리가 됐잖아요? 가혹한 고통과 희생도 긍정적인 새 희망으로 탈바꿈한다는 진리를 사명감을 갖고 알려 볼게요.”
밀레 아치스텝 키스톤 워킹화
트레킹의 계절인 봄이 왔다. 길을 오래 걸으려면 자신에게 맞는 워킹화를 고르는 게 중요하다. 직접 신어 보고 발볼이 편안한지 등을 살피는 것이 필수다.
신발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탄성이 뛰어난 중창(신발 가죽과 바닥 사이에 샌드위치형으로 삽입한 창)을 사용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달릴 때에 비해 걸을 때는 발이 지면에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닿는다. 그래서 몸의 하중이 꽤 많이 발에 전해진다.
그 때문에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걸음을 내디딜 때 리듬감 있는 탄성을 제공하는 고탄성 중창을 사용한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고탄성 중창이 사용된 제품은 발바닥 중앙의 움푹 팬 아치가 유연한 상하 운동을 하도록 도와 편하게 걷도록 해 준다.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 용품기획부 송선근 차장은 “발바닥의 아치는 체중을 지탱해 충격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건강한 걷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東亞日報와 밀레가 함께하는 열두 길 트레킹
양양=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