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부터 영화에 관한 궁금증을 해결해달라는 내용의 e메일을 받기도 합니다. 궁금증 중 가장 많은 것은 ‘이 영화가 이런 관람등급으로 분류된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등급분류에 관한 내용이지요. 최근 접수된 독자의 궁금증 중 등급분류에 관한 내용을 골라 속 시원하게 해결해드립니다.
Q. 고등학생인 딸과 아내와 함께 ‘스물’이란 청춘영화를 보았습니다. 딸이 이 영화에 나오는 김우빈의 팬이지요. 근데 영화를 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딸과 함께 보기에 영 민망했습니다. “네 엉덩이에 내 ‘꼬추’를 비비고 싶어”라며 남자가 여자한테 들이대는가 하면, 극중 여고생이 친오빠의 둘도 없는 친구에게 “오빠도 자위해? 자위할 땐 꼭 윤활제나 크림을 써야 한대”라는 대사를 무슨 하품하듯 따분한 표정으로 던지지요. 이런 저질스러운 대사가 남발되는 영화가 어찌하여 ‘15세 이상’ 등급을 받아 저의 딸처럼 순진한 아이가 쇼크를 받는 일이 생긴단 말인가요.(고1 딸을 둔 아버지)
A. 일단 얼마나 충격과 상심이 크셨겠습니까. 하지만 이 영화를 아니꼽게만 보지 마시고 요즘 신세대의 성(性) 관념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삼아 보시면 어떨까요? 이 영화에는 ‘사귀는’ 사이와 ‘애인’ 사이가 어떻게 다른지를 구분하는 신세대의 대화가 나옵니다. 사귀는 사이는 키스까진 하는 관계이고 애인은 더 야한 것까지 하는 관계라고요? 아닙니다. 영화 속 신세대들은 이렇게 일도양단하지요. “사귀는 사이는 만날 때마다 (섹스)하는 관계이고, 애인 사이는 (섹스)하고 싶을 때마다 만나는 관계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지요. 영화 ‘스물’이 ‘15세 이상’을 받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꼬추’를 비비고 싶다”고 말만 했을 뿐 실제로 ‘꼬추’를 비비는 행동을 하진 않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꼬추’라는 비유적 단어를 채택하여 귀엽고 앙증맞게 표현함으로써 전체 맥락으론 성적 수위가 높지 않다고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큰 줄거리로 보면 이 영화는 에로영화가 아니라 고교를 졸업한 스무 살 청춘들이 방황과 절망 속에서 꿈을 찾아가는 성장담이니까요.
‘말’로 끝나는 것과 실제 ‘행위’로 옮기는 것은 관람등급 분류에서 천양지차입니다. ‘12세 이상’이었던 제임스 딘,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영화 ‘자이언트’(1956년)를 보세요. 여기서 제임스 딘은 “당신은 언제나 귀여워. 한입 깨물어 먹고 싶을 만큼 예뻐”란 대사를 뻔뻔하게 던지며 매혹적인 유부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마음을 진도 8.0으로 뒤흔들어버리지요. 이때 만일 제임스 딘이 진짜로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우적우적 씹어 먹어버렸다면 ‘18세 이상’이거나 ‘제한상영’ 등급을 받았을 겁니다.
등급분류엔 절대 기준이 없는 만큼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3-시스의 복수’(2005년)는 레이저 칼을 휘둘러 상대 로봇의 머리와 팔이 뎅강뎅강 잘려나가는데도 ‘전체관람’이었습니다. 잘려나가는 주체가 ‘사람’이 아닌 ‘로봇’인 데다 피가 일절 표현되지 않았으니까요. 만약 로봇의 목이 잘릴 때 트레비 분수처럼 피가 철철 솟구쳐 올라 피바다를 이뤘다면 ‘15세 이상’ 아니 그 이상 등급을 받았을지도 모르지요.
‘트랜스포머 4: 사라진 시대’(2014년)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봇들이 뒤엉켜 싸우면서 상대의 머리통을 당근 뽑듯 쑥쑥 뽑아버리는데도,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혼자 가서 볼 수 있는 ‘12세 이상’이었습니다. 반면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처럼 피 한 방울 안 나와도 ‘청소년 불가’로 분류되는 영화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절반으로 싹둑 잘라버리는 대상은 로봇이 아닌 사람이었으니까요.
어떤 영화는 애초에 영등위에 ‘청소년 관람불가로 분류해주세요’ 하고 자발적으로 신청하기도 합니다. 왜냐고요? 어차피 망할 영화, 차라리 ‘청소년 관람불가’로 내걸어 욕망 아저씨들이 호기심에 이끌려 불나방처럼 극장을 찾도록 만들려는 ‘낚시’ 전략이지요(근데 의외로 많이 걸려듭니다).
※다음 칼럼에는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선 영화 ‘위플래쉬’ 속 리더십에 관한 독자의 날카로운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이 이어집니다.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