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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애진 기자의 주球장창]‘비더레’ 우승하고 싶나요

입력 | 2015-04-03 03:00:00


시작은 항상 설렙니다. 지난해 봄이 벚꽃과 함께 시작됐다면 올해 봄은 야구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떨어지는 벚꽃처럼 올 시즌에도 그라운드에선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겠죠. 시즌이 계절처럼 흐르는 동안 ‘장창(‘늘’의 방언)’ 야구 이야기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주球(구)장창’을 선보입니다. 첫 번째는 지난해 야구팬들을 열광시켰던 ‘비 더 레전드(비더레)’ 이야깁니다.



비더레는 야구팬들에겐 ‘덤’ 같은 즐거움을 줬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안타를 치면 기쁨이 두 배가 됐으니까요. 매일 경기 전 안타를 칠 것 같은 선수를 한 명 고른 뒤 그 선수가 안타를 치면 ‘1콤보’가 적립됐죠. 40콤보를 적립한 참가자들은 4억 원의 상금을 나눠 가졌습니다. 40콤보로 정한 건 삼성 박종호(현 LG 코치)가 세운 39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넘어 레전드(전설)가 되라는 의미였습니다.

평소 야구 지식만은 남부럽지 않다고 자부해온 팬들에게 비더레는 자신의 내공을 시험해보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벤트를 진행한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통계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지난해 36명(0.007%)이 상금을 받았습니다. 대체 이들은 어느 정도의 ‘야구 고수’일까요.

허탈하게도 우승자들의 성공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치열한 기록 분석이 아닌 열렬한 팬심(心)의 승리였습니다. 20년 한화 팬, 한충렬 씨(43)는 한화의 상대 팀 1번 타자를 주로 골랐습니다. 지난해 한화(49승 77패)는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많았습니다. 한화가 지더라도 쌓이는 콤보를 보며 서운함을 달래려는 웃픈(웃기고도 슬픈) 심정이었죠. 20콤보 이후부터는 다른 팀의 잘하는 타자들을 골라가며 찍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한화가 워낙 약해서 처음의 원칙을 끝까지 지켰어도 우승했을 것 같다는 게 한 씨의 생각입니다.

우승자 중에는 야구 문외한도 있었습니다. 강태희 씨(26·여)는 야구광인 직장 상사의 추천으로 비더레를 시작했습니다. KIA를 응원하긴 했지만 평균자책점이라는 개념도 잘 몰랐죠. 단순히 안타를 많이 치는 선수를 골랐던 게 그만의 비결이었습니다. 강 씨는 비더레를 하면서 야구에 대해 많이 배웠고 그 매력에 빠졌다고 합니다. 참고로 강 씨 역시 한화 상대팀 타자를 많이 골랐다고 하네요.(^^)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우승자 대부분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 선수를 주로 선택했습니다. 실제 시즌 초반에는 김주찬의 활약에 힘입은 KIA 팬이 우승자의 약 40%를 차지했다고 하네요. 실패한 참가자 중에는 선택한 타자가 안타를 못 친 사례보다 깜박하고 타자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결국 꾸준한 관심과 애정이 최고의 우승 비결이었던 셈입니다.

올해는 지난해처럼 많은 이들이 우승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비더레가 ‘50콤보 달성’으로 조건을 높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지난해 확실한 믿음(?)을 줬던 한화가 달라졌기 때문이죠. 한화는 아직 순위표 아래쪽(1승 2패)에 있지만 팀 도루 6개(2위), 실책 0개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역대급으로 높았던 팀 평균자책점(6.35)도 4.30(3경기)으로 낮아졌고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넥센 서건창, KIA 김주찬 등 꾸준한 안타 생산으로 비더레 참가자들을 기쁘게 했던 타자들의 방망이는 올해도 뜨거울 테니까요. 올 시즌 4경기 만에 7안타(타율 0.500)를 뽑아낸 LG 오지환처럼 새로운 비더레 영웅의 탄생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습니다. 혹시 아나요. 내가 ‘찍은’ 선수를 열심히 응원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50콤보의 주인공이 돼 있을지.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