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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백두산 폭발과 발해의 멸망

입력 | 2015-04-03 03:00:00


지난 2000년간 가장 큰 화산 폭발이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이었다. 단 한 번의 분화로 한반도 전체를 5cm 두께로 덮을 수 있는 화산재를 쏟아냈다. 마그마의 양이 폼페이를 무너뜨린 베수비오 화산 폭발(서기 79년) 때의 50배나 됐다. 폭발 당시 25km 상공까지 화산재가 뿜어 올라갔고, 시멘트 비슷한 ‘화산이류(泥流)’가 돌진해 촌락을 덮쳤고, 반경 100km는 숯검댕이 되었을 것이다.

▷발해는 926년 거란족에게 함락됨으로써 멸망했지만 백두산 폭발로 사라졌다는 이설(異說)도 있다. 문제는 백두산 분화의 정확한 시점을 모른다는 점. 그런데 지난달 23일 제주에서 열린 ‘한중 백두산 마그마 연구 워크숍’에서 홍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자원분석실장이 백두산 현지 탄화목(화산재에 불탄 나무 화석)을 분석해 분화 시점이 939년이라고 발표했다. 역사의 퍼즐 조각 하나가 맞춰진 것이다.

▷기록상 백두산 대폭발보다 발해 멸망이 먼저라고 하지만, 아닐 가능성도 있다. 발해 멸망에 관한 기록이 담긴 ‘요사’는 926년에서 400년이 지나서 나온 승자의 기록이다. 일본 역사에는 발해가 930년대에도 사신을 계속 보내온 것으로 돼 있다. 거란의 태조 야율아보기는 발해를 정복한 후 바로 돌아오다 길에서 숨진다. 그는 왜 이 땅을 포기했을까. 934년 발해 세자 대광현이 수만 명을 이끌고 고려에 투항했다는 ‘고려사’ 기록은 어찌된 걸까.

▷이런 점들은 거란에 의한 도성 함락 후에도 발해가 일정 기간 존속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말 궁금한 것은 그런 대폭발이 있었는데도 왜 단 하나의 기록도 없느냐는 점이다. 백두산 폭발을 목격하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발해 사람들은 그것이 화산 폭발인 줄 모르고 하늘이 내린 벌(罰) 정도로 여겼을지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폭발이 국가와 문명을 붕괴시킬 정도로 컸다는 점이다. 백두산이 최근 수년간 화산 폭발 직전의 징후를 나타내 한국과 중국이 7월 공동탐사에 나선다. 발해를 멸망시켰던 화산재의 대재앙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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