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을 순방 중이던 지난달 6일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에선 전국 검사장 간담회가 열렸다.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날 ‘사회지도층 비리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 등 구조적인 부정부패를 엄단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촉이 빠른 일부 검사장들은 “사정 바람이 불 것”을 예감했다고 한다.
거악(巨惡)을 척결하는 특별수사는 밀행(密行)이 원칙이다. 수사 대상자가 모르게 충분히 내사한 뒤 전격 소환하는 수순을 밟아야 성공 확률이 높다. 검찰은 종래 사용하던 ‘전국 검사장 회의’라는 명칭 대신 ‘전국 검사장 간담회’로 격을 낮췄다. 법조 출입기자들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 2월 정기인사로 교체된 수사라인의 전열 정비에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담화 다음 날 검찰은 포스코건설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사정정국의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3주가량 지났지만 MB 정부의 실세를 겨냥한 포스코 비자금 수사는 실무자들의 진술 거부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특별수사에 밝은 검찰 출신 변호사들은 “검찰이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떠밀리듯 수사에 나선 것 같다”고 말한다.
청와대와 검찰이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기획사정설’은 그만큼 설득력이 떨어진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태와 세월호 참사가 이어지면서 대형 수사에 손놓고 있던 검찰이 ‘밀린 숙제’를 하기 위해 몸을 풀기 시작할 참이었다. 마침 중동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 대통령이 밀린 공부 하듯 보고서를 들춰 보다 ‘전국 검사장 간담회’를 간추린 보고서에 눈이 번쩍 뜨였던 것은 아닐까.
김진태 검찰총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환부만 정확하게 도려내 사람과 기업을 살리는 수사를 할 것”을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지휘부에 주문한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비리의 덩어리를 들어내라”는 박 대통령의 주문으로 검찰의 부담은 커졌다. 무언가 성과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김 총장은 예전에 특별수사 검사를 잠수부에 비유한 적이 있다. 고기를 많이 잡을 욕심에 한계시간을 넘겨 익사하면 하수 중의 하수, 눈앞의 고기를 죄다 찔러 보다 상처만 내고 말면 하수, 주어진 시간 안에 정확히 목표한 만큼 작살에 꿰어 올라오면 고수라고 했다. 검찰이 기획사정인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한 이번 사정 수사를 고수처럼 해낼지 지켜보겠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