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은 봄바람을 타고 북상 중이다. 제주를 물들인 노란 유채꽃, 경남 진해를 하얗게 물들인 벚꽃은 이미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펑펑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꽃들은 4월 중순이면 서울까지 만개한다. 전국은 이제 꽃밭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봄을 만끽한다. 그들을 맞는 것은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다. 3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는 664개에 이른다.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거나 후원하면서 사흘 이상 열리는 축제만 집계한 것이다. 소규모 축제까지 합하면 1000개를 훌쩍 넘긴다. 올봄에만 크고 작은 축제 수백 개가 전국 곳곳에서 상춘객을 맞는다. 3월 말 남도에서 시작한 봄꽃축제는 5월 초순 떨어지는 꽃잎과 함께 대부분 끝을 맺는다. 이후로는 6월까지 지역 특산물이나 역사를 내세운 체험형 축제가 뒤를 잇는다.
▼ 천지에 봄바람… 진해 벚꽃망울 눈앞에 화르르 ▼
봄, 축제가 시작됐다… 어디로 갈까
그렇다면 벚꽃의 정수는 여의도에 있나? 아니다. 진해엔 36만 그루의 벚나무가 있지만 여의도에는 1641그루만 있을 뿐이다. 여의도 벚꽃은 경주 보문단지 둘레에 심어진 벚나무(8500여 그루)에도 한참 모자란다. 여의도 벚꽃을 보고 “올봄 꽃놀이 잘했다”고 얘기하면 진해 사람은 웃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봄을 만끽하려면 도시를 떠나야 한다. 국내 최대(그루 기준) 벚꽃축제인 제53회 진해 군항제는 10일까지 열린다. 이번 주말(4, 5일)이 벚꽃의 절정이다. 진해 곳곳에 있는 벚꽃 군락 중 어디를 찾아야 할까. 안민고개 장복산공원 제황산공원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 등이 있지만 역시 여좌천과 경화역 일대가 명소 중의 명소다. 이 두 곳은 미국 CNN방송이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50곳’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번 주말을 놓쳤다면 폐막일인 10일 찾으면 어떨까. 눈처럼 떨어지는 벚꽃을 즐긴 뒤 오후 8시 진해루를 찾아 밤바다를 배경으로 한 멀티미디어 불꽃 쇼를 감상할 수 있다.
김지하 시인이 ‘신성한 꽃밭이자 국토의 단전(丹田)’이라고 노래했다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 화개장터에서도 5일까지 벚꽃축제가 열린다. 화개장터는 지난해 예기치 않은 화재로 점포 절반가량이 소실됐다. 이번 축제는 장터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보내준 성원과 격려에 보답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노래 ‘화개장터’를 부른 가수 조영남의 갤러리카페도 3일 문을 열었다.
봄에 제주도를 찾는다면 청보리의 장관을 맛보자. 11일부터 내달 10일까지 열리는 가파도 청보리축제를 찾으면 파란 보리물결이 해풍에 일렁이는 장관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보리밭 면적만도 60만 m²에 달한다.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6294m²)의 95배에 달하는 푸른 융단이 넘실대는 것이다. 5km 남짓한 가파도 올레길(10-1코스)을 따라 걸으면 푸른 보리밭과 제주의 푸른 바다가 한꺼번에 가슴속에 들어온다. 힐링이란 표현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다. 17∼19일 제주를 찾았다면 가파도에 이어 우도로 건너가 보자. 유채꽃큰잔치와 우도소라축제가 한창이다. 해녀복을 입고 직접 해산물을 채취하는 우도 해녀체험도 좋다. 수영이 부담스럽다면 천진항 주변의 해안에서 소라잡기 체험을 하면 된다. 인심 좋게 모두 무료다. 다만 토요일인 18일은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돼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17, 19일 오전을 노리자.
전통을 주제로 한 축제도 있다. 전통어촌 민속 문화 축제인 광안리 어방축제는 24∼26일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일대에서 열린다. 어방축제는 조선시대 경상좌수영에 설치됐던 전통 민속놀이인 좌수영어방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2호) 수영야류(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 등 무형문화재와 현대문화가 어우러진 행사다. 어방은 수영지역에 조선시대 경상좌수영이 설치되면서 수군의 부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군과 어민이 협력해 어업을 권장하고 지도하던 공동작업 체제를 일컫는다. 당시 행해지던 어로작업 과정을 놀이로 구성한 것이 좌수영어방놀이다. 행사 하이라이트는 25, 26일 오후 6시 반∼8시에 열리는 어방그물 끌기 및 진두어화. 옛 좌수영어방에서 횃불을 들고 고기(멸치)를 잡는 수영 지방의 전통적인 고기잡이 모습을 어선의 횃불과 바다에 비친 불빛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으로 재현한다. 어선 30여 척이 동원돼 빚어내는 200여 개의 각종 불빛이 장관을 이룬다.
5월 아이와 함께 전남을 찾는다면 담양 대나무축제(1∼5일)나 여수 진남거북선축제(3∼5일)를 들러보면 어떨까. 담양 죽녹원과 읍내를 따라 흐르는 관방천에서 열리는 대나무축제에서는 어린이들이 하천을 따라 대나무 배타기 등을 즐길 수 있다. 또 1970, 80년대 플라스틱 제품 판매 이전에 사용했던 죽제품을 파는 추억의 죽물시장을 들르는 것도 재미를 더한다. 진남거북선축제에서는 5월 3일 오후 5∼10시 여수 구도심에서 열리는 통제영길놀이를 빼놓지 말자.
매년 5월 말에 열리는 부산 해운대 모래축제를 찾으면 한여름에 볼 수 있는 각종 모래놀이를 한발 앞서 즐길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 사방에 봄향기… 고창 풍천장어 입 안에 사르르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행지를 선택할 때 ‘음식’은 2차 조건이었다. 먼저 볼거리 즐길거리를 정한 뒤에나 음식은 고려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별미만 찾아다니는 ‘먹거리 여행’이 유행일 정도로 맛난 음식이라면 멀리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축제도 마찬가지다. 잘 보고 즐겼어도 배를 채우지 못하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축제의 완성은 음식으로 마무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맛이 떨어지는 봄,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축제를 찾아 식욕도 찾고 건강도 챙기면 어떨까.
충남 보령시 무창포해수욕장에서 12일까지 열리는 ‘주꾸미·도다리축제’에서는 주꾸미가 주인공이다. 특히 봄철 주꾸미 암놈의 먹통에는 알이 꽉 차 있다. ‘밥알’이라 불리는 게 톡톡 씹히며 맛도 느낌도 일품이다. 불포화지방산과 두뇌에 좋다는 DHA가 풍부하고 지방간에도 좋다는 타우린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럼 어떻게 하면 ‘제대로’ 먹을까. 취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냉이 대파 무 배춧잎 등 야채를 듬뿍 넣고 끓인 뒤 육수에 살아있는 주꾸미를 넣고 살짝 데쳐 초장이나 간장에 찍어 먹는 샤부샤부를 보통 으뜸으로 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다소 가격이 올라 아쉽다. 주꾸미 1kg(중간 크기 7∼9마리)에 상차림을 포함해 5만 원 정도. 두 사람이 먹기엔 충분하다.
매년 4월 열리는 부산 기장 멸치축제는 살이 오른 봄 멸치를 맛보려는 관광객들로 성황을 이룬다. 동아일보DB
울산 남구 장생포에서 5월 28∼31일 열리는 ‘울산 고래축제’를 가면 고래고기에 도전해보자. 고래 특유의 향(독특한 누린내)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그 향을 못 잊는 사람도 많다. 꼬들꼬들하고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일품. 고래고기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젓갈보다는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을 추천한다. 축제 기간 동안 고래연구소 앞 광장에는 고래고기를 싸게 파는 장터 ‘고래밥’도 운영된다. 올봄 제주를 찾는다면 소라 음식을 권한다. 가파도에서 열리는 청보리축제(4월 11일∼5월 10일), 우도에서 열리는 ‘유채꽃큰잔치·우도소라축제’(4월 17∼19일) 때 모두 소라가 음식 대장이다. 탱글탱글한 식감이 일품이다. 제철 맞은 소라를 구이 죽 무침 등으로 다양하게 즐기자.
18∼26일 열리는 대구 달성군 비슬산 참꽃(진달래)축제를 찾아 연분홍 진달래에 취했다면 곰탕과 메기매운탕으로 허기를 채우자. 쇠꼬리와 양지머리 등으로 만드는 현풍곰탕은 달성의 명품 음식으로 꼽힌다. 1945년 문을 연 원조 현풍할매집 곰탕은 전국 곳곳으로 진출했다. 다사읍 부곡리 농촌마을에서 즐겨 먹던 메기매운탕은 대구지하철 2호선 문양역 주변에 식당 수십 곳이 생겼다. 논에서 자란 메기여서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하다. 18∼30일 열리는 인천 강화군 고려산 진달래축제에서 분홍빛 장관을 본 다음에는 차로 약 20분 거리인 외포리로 이동하자. 얼큰하고 시원한 꽃게탕이 일품이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듯이 진해 군항제(10일 폐막)를 찾으면 도다리 회를 맛보는 게 좋다. 춘천마임축제(5월 24∼31일)를 찾았는데 닭갈비와 막국수가 살짝 ‘식상’하다면 춘천댐 근처의 매운탕골로 향하는 것도 대안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