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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온난화로 ‘한라산 명물’ 구상나무가 사라진다

입력 | 2015-04-06 03:00:00

집중호우 등 기후변화로 절반 고사… 체계적인 보존 대책 빨리 마련해야




한라산 백록담 북벽 등산로 근처의 구상나무들이 대부분 말라죽어 있다. 기상이변 등의 여파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구상나무 숲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 시내에 벚꽃이 한창일 때도 한라산 정상 주변 등산로와 응달진 곳에는 잔설이 남아 있다. 정상을 덮었던 이 눈이 사라지면 참혹한 경관이 드러난다. 줄기가 누렇게 변해 말라 죽은 구상나무들이다.

늘 푸른 나무인 구상나무는 눈 속에서도 푸른 잎을 간직한다. 눈이 녹으면서 푸른 모습을 드러내고 줄기 끝에서 새로운 잎이 돋아난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한라산 백록담 북벽 주변에서는 더이상 이런 경관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미 상당수 구상나무가 말라 죽었기 때문이다.

북벽 부근 전망대에서 왕관릉 방면으로 눈길을 돌리자 고사한 구상나무가 끝없이 펼쳐졌다. 피라미드 형태로 곧게 펴진 형상을 죽어서도 간직해 ‘살아서 100년, 죽어서 100년’이라는 별명이 붙은 구상나무는 한라산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한라산에 구상나무가 분포한 지역은 해발 1300m 이상 고지대 52곳이다. 구상나무가 대단위로 군락을 이룬 것은 세계적으로 제주도가 유일하다.

○ 구상나무 절반 고사

제주도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10월부터 2014년 9월까지 1년 동안 한라산 구상나무 분포지역을 조사한 결과 ha당 평균 2028그루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죽은 구상나무가 ha당 평균 930그루로 전체 개체의 45.9%이고, 살아있는 구상나무는 54.1%인 ha당 평균 1098그루로 나타났다.

전체 고사목의 20.7%에 해당하는 ha당 평균 192그루가 2010년 이후에 고사한 것으로 분석됐다. ha당 구상나무 고사목 비율은 윗세오름 일대(해발 1590∼1690m)가 67.2%로 가장 많았고 성판악 등산로 일대(1800m)가 65.0%였다. 구상나무를 제외한 다른 수종의 생존율은 91.0%나 돼 큰 차이를 보였다.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 측은 어린 구상나무의 생성이 매우 낮아 구상나무 개체가 계속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 보전대책 시급

제주도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에 따르면 1990년대까지는 구상나무의 고사 원인이 천이(遷移·시간이 지나면서 변천해 가는 양상), 노령화, 개체 간 경쟁 등 자연적 요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접어들면서 잦은 태풍과 집중 강우, 적설량 감소 등 기후변화에 따른 생육기반 악화, 병해충 피해 등으로 고사 원인이 다변화됐다. 기후온난화로 소나무가 구상나무 자생지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제주도는 구상나무 보전 및 복원을 위해 환경부 산림청 등 국공립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협력체계를 구축했으나 만족스러운 해법이 나오지 않고 있다.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 고정군 생물권지질공원연구과장은 “구상나무 숲 스스로가 재생되는지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숲은 어린나무의 확장과 생장으로 지속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구상나무도 이런 구조를 유지하는지 연구와 함께 체계적인 보전을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