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도쿄 특파원
일본인들의 벚꽃 사랑은 각별하다. 전전(戰前)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의 첫 문장은 ‘피었다 피었다 사쿠라(さくら·벚꽃)가 피었다’였다. 봄을 노래하는 동요에서도 사쿠라가 빠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봄=사쿠라’라고 은연중에 배운 것이다.
일본인은 수치심을 드러내길 싫어한다. 죽을 때도 아름답고 정결하게, 주위에 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바람에 흩날리며 아름답게 산화하는 벚꽃의 꽃잎에 감탄한다.
이 때문에 벚꽃이 피면 일본인들은 너나없이 벚꽃 아래 돗자리를 펴고 술을 마신다. 도쿄 유원지가 들썩거리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벚꽃은 또 다른 얼굴도 갖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9월 남태평양 도서국가인 팔라우에서 일본은 압도적 전력으로 무장한 미군의 공격을 받았다. 미군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게 되자 11월 24일 옥쇄(玉碎)를 결정한다. 옥쇄는 ‘옥이 부서지듯 아름답게 죽는다’는 뜻으로 집단 자결이나 최후 항전을 의미한다. 죽음을 미화하는 일본 특유의 사고가 반영된 단어이기도 하다. 지휘관이었던 나카가와 구니오(中川州男) 대좌(대령)는 본부에 ‘사쿠라 사쿠라’란 최후 전문을 보낸 뒤 자살했다. 전문의 사쿠라는 ‘일왕과 일본을 위해 죽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근대 들어서면서부터 국가 차원에서 벚꽃을 찬미했다. 1905년 러일전쟁 승리를 기념해 전국에 벚나무를 심었다. 국가적 행사를 기념할 때면 벚나무 심기를 빼놓지 않았다.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강해질수록 벚나무 심기는 확산됐고 성 주위나 군사 훈련장에서는 예외 없이 수많은 벚꽃을 볼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곳들은 대부분 공원으로 변했다. 도쿄에 벚꽃 명소가 많은 것은 역설적으로 태평양전쟁 시절 온갖 군사시설이 밀집돼 있었기 때문이다.
전후 70년이 지났지만 벚꽃에 배어 있는 군국주의 냄새는 지금도 맡을 수 있다. 기자는 4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찾아가 봤다. 신사에는 약 600그루의 벚나무가 있어 도쿄의 유명 벚꽃 명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도쿄에 벚꽃이 개화했음을 알리는 표지목도 야스쿠니신사에 있다. 신사 정문으로 이어지는 통로 한가운데 임시 무대가 마련돼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핀 꽃은 지는 법. 나라를 위해 멋지게 지자… 꽃의 고향 야스쿠니신사. 봄에 피어 다시 만나자.” 태평양전쟁 시절 유행했던 군가 ‘동기(同期)의 사쿠라’였다. 기자는 위화감을 느꼈지만 신사에 참배하러 온 이들은 입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회상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