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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상 교수의 영원을 꿈꾼 천년왕국 신라] 에로틱한 흙인형의 비밀

입력 | 2015-04-06 03:00:00

신라의 속살 드러낸 ‘19禁 토우’




1973년 신라고분에서 발견된 국보 195호 ‘토우장식 장경호’의 토우 중 남녀의 성애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토우.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1926년 5월 20일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이던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는 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 개관을 준비하던 중 다급한 전보를 받았다. 경주에서 신라 고분이 여럿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촉탁직원 고이즈미 아키오를 불러 함께 현장을 찾았다.

이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황남대총 주변 밭에서 흙을 파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곳곳에 무덤 잔해와 유물이 흩어져 있었다. 경동철도 경주정차장 건설에 필요한 토사를 채취하던 중 고분이 발견됐다고 했다. 공사는 5월 초순부터 시작됐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분이 훼손됐겠는가.

고이즈미 회고록에 따르면 공사를 중단시키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 단시간 내 흩어진 유물을 수습하는 데 그쳤고, 공사장 인부들과의 갈등으로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고 한다. 이때 후지타와 고이즈미는 눈을 의심할 정도의 유물을 발견한다. 크기는 5cm도 안 되는데 남녀 성기를 강조한 흙 인형이었다. 게다가 ‘19금’ 자세까지 취하고 있었다.

금관총과 금령총, 식리총 발굴에서도 이런 유물은 출토된 적이 없었기에 놀라움은 더했다. 산 사람을 죽여 무덤 속에 껴묻고, 골품제로 구성된 폐쇄적인 사회라는 이미지와 다른 신라의 속살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다만 토우 대부분이 토기에서 떨어진 채로 출토돼 장인의 의도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47년이 흐른 뒤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1973년 정부의 미추왕릉지구 정화사업에 따른 발굴에서다. ‘C지구 30호묘’로 불린 작은 무덤 안에 성을 소재로 한 완벽한 토우가 들어 있었다. 이 토우는 국보 195호로 지정된 항아리에 붙어 있었다. 이 항아리는 5세기 후반에 유행한 신라 토기의 일반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항아리의 어깨와 목 곳곳에 다양한 장식이 붙어 있어 눈길을 끈다. 개구리와 거북, 뱀, 새 등 동물들이 묘사돼 있고 그 사이에 조용히 앉아 현악기를 연주하는 임신부와 아무 거리낌 없이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캔버스에 그린 그림처럼 여러 인물과 동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는데 주인공은 한 쌍의 커플이 아닐까 싶다.

이 항아리를 왜 이렇게 못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차근차근 살펴보면 작가의 의도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날카롭고 섬세한 도구를 이용해서 여러 번 깎고 다듬었다면 어땠을까. 정교한 조각품은 됐겠지만 특유의 자연스러움은 사라졌을 것이다. 아울러 예술작품이라기보다는 외설스러운 토기 정도로만 인식되었을 수도 있다. 손가락으로 쓱쓱 빚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당당한 모습과 여인의 미소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 감탄을 자아낸다. 숙련된 장인의 의도된 거친 터치가 오히려 자연스러움과 강렬함을 탄생시킨 것이다.

누가, 왜 이처럼 에로틱한 장면을 토기에 표현했고 그것을 무덤 속에 묻은 것인지 아직 설득력 있는 해석은 나오지 않았다. 신라 사회에 만연했던 개방적인 성 풍속의 산물로 보기도 하고 다산과 풍요를 희구하며 만든 제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왕릉급 무덤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나왔어야 하겠지만 실제 발굴 결과는 그렇지 않아 의문이 남는다. 예기치 못한 새로운 발견을 통해 신라인의 진정한 속살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한상 교수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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