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를 칠 줄 아는 분은 한번 기타를 들고 코드를 짚어보시죠. D단조를 예로 들면 Dm-A-Dm-C-F-C-Dm-A. 이렇게 여덟 개의 코드가 반복됩니다. 이런 화음의 바탕 위에 느릿한 3박자로 음악이 흘러갑니다. 약간은 비감하고, 약간은 장중한 느낌입니다. 15세기에서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인들은 바로 이 코드진행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폴리아를 들으면 ‘중세 또는 르네상스 느낌’을 짙게 느끼게 됩니다.
이런 폴리아의 느낌을 현대에 응용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 출신의 대중음악가 방겔리스입니다. 음악사에 대해서도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그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맞아 1992년 발표된 영화 ‘1492 콜럼버스’ 주제음악에 바로 이 폴리아의 화음진행을 응용했습니다. 장중한 이 주제음악에서 르네상스적인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왜 베토벤은 근대적 교향곡의 한가운데 옛날 형식을 삽입한 것일까요. ‘나는 혁신가이지만 옛날 음악도 깊이 연구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한 것일까요, 그냥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악상에 폴리아의 화음진행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그의 내면에 들어가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귀가 안 들리는 그에게 제자나 비서가 물었다면, 오늘날 남아 있는 그의 손글씨 대화록에 한마디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싶어 아쉽기도 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