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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양섭 전문기자의 바둑人]日 컴퓨터 바둑대회서 준우승, 인공지능 SW ‘돌바람’…상용화는?

입력 | 2015-04-07 18:35:00

바둑 프로그램 돌바람을 개발한 임재범씨. 그는 “3년내 프로와 2점으로 버티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제공

돌바람 개발자 임재범씨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한다고 해도 당분간 인간을 이기는 바둑 프로그램이 나오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제공

조치훈 9단이 한국 바둑프로그램 돌바람과 대국에서 패한뒤 취재진에 둘러쌓여 있는 모습. 일본기원 제공

바둑 프로그램 돌바람의 화면. 오른쪽에 바둑판 왼쪽에 수치가 보인다. 수치 중에는 이길 확률도 표시돼 있다. 한국기원 제공


슈퍼컴퓨터 딥 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을 누른 지 18년, 슈퍼컴 왓슨이 ‘제퍼디 쇼’에서 퀴즈 달인들을 누르고 우승한 지도 4년이 지났다. 올해는 구글이 스스로 게임 능력을 학습하며 프로게이머의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도 선보였다. 그런데 바둑 인공지능은 아직 프로에게 4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 수준의 프로그램도 프랑스와 일본 것뿐이었다.

한국에서도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나왔다. 한국 ‘돌바람’은 지난달 일본 전기통신대학(UEC) 컴퓨터 바둑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그 기념으로 조치훈 9단과 둔 4점 접바둑에서도 이겼다. 돌바람 개발자 임재범 씨(44)를 만나 당시 상황과 바둑 소프트웨어의 현주소와 미래를 물어보았다.

―UEC 대회는 어떤 대회인가.

“바둑 프로그램끼리 실력을 겨루는 대회다. 8회째다. 올해 대회에는 한국 일본 대만 프랑스 캐나다에서 22개 프로그램이 참가했다. 일본 팀이 대다수였다. 돌바람은 공식대회 첫 출전이었지만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준결승 상대는 일본의 강호 ‘젠(Zenn)’을 누르고 올라온 노미탄이었다. 돌바람은 노미탄도 누르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는 프랑스의 크레이지스톤(Crazy Stone)에 패했다. 일본과 프랑스가 판치던 분야이기에 준우승도 기쁘다.”

돌바람의 좋은 성적은 많은 실전 훈련을 거쳤기 때문. 매달 열리는 KSG(일본의 판다넷이 만든 바둑 대국 서버) 대회에 나가 2013년 10월 9줄바둑에서 우승했고, 12월에는 13줄바둑에서 크레이지스톤을 눌렀다. 올해 3월에는 젠을 이겼다.

돌바람은 그가 개발한 2번째 바둑 프로그램. 1998년 ‘바둑이’를 개발했으나 아마 초단도 안 되는 실력. 당시로서는 더이상 실력 향상이 어렵다고 보고 포기했다. 그러다 2012년 바둑 프로그램으로서는 도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았던 아마 4, 5단 실력을 갖춘 젠을 알게 됐다. 젠이 몬테카를로 방식이라는 알고리즘을 응용한 결과였다. 몬테카를로 방식은 무수한 모의 대국을 둬 통계적으로 더 나은 착수를 얻어내는 알고리즘. 컴퓨터 계산이 빨라지면서 가능해진 것. 그는 다시 이 분야에 도전했다. 프로그램 이름은 돌바람으로 정했다. 돌로 바람을 일으키자는 뜻을 담았다. 대학 졸업 뒤 한메소프트 위고바둑 등에서 네트워크 서버 프로그래머로 일한 게 도움이 됐다. 그의 기력은 7급 수준. 그는 “바둑 프로그램과 기력의 상관관계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조치훈과의 대국은 어땠는가.

“대국시간은 제한시간 30분에 초읽기 30초였다. 제한시간 때는 45초에, 초읽기 때는 29초에 수를 찾도록 프로그래밍 했다. 돌바람은 초당 4만 번 정도 모의 대국을 한다. 모의 대국은 A라는 곳에 돌을 놓은 뒤 끝까지 한판을 둔 것을 뜻한다. 이때 승부 확률도 나온다. 29초 동안 거의 120만 개에 가까운 모의대국을 두는 셈이다. 이 가운데 이길 확률이 높은 쪽으로 착수한다. 조 프로는 114수부터 장고를 시작했다. 자신의 머리를 때리기도 하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결국 돌바람이 250수만에 불계승했다.”

조치훈은 이어 벌어진 크레이지스톤과의 3점 접바둑에서는 승리했다. 조치훈은 “크레이지스톤은 초중반을 짜나가는 방식이 돋보였고, 돌바람은 중후반에 강점이 있다”고 평했다. 임 씨는 “바둑돌의 특정 패턴에 가중치를 두는 식으로 쓸데없는 곳에 두는 낭비 요인을 줄였다”고 말했다. 이웃 돌과의 연관성을 중시했더니 중앙을 중시하는 기풍으로 나타났다는 것.

―언제쯤 프로 기사를 이길 수 있을까.

“바둑은 체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하다. 현재 몬테카를로 방식으로는 프로를 따라잡기 어렵다고 본다. 슈퍼컴퓨터를 돌려도 이기기는 어렵다고 본다. 올해 프로 기사에게 3점, 3년 안에 2점으로 버티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꿈이다.”

그는 돌바람의 약점으로 수순이 긴 경우 제대로 수를 못 읽는다거나 기복이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를 개선해 나가면서 앞으로는 상대가 돌을 놓기 전에도 ‘생각하는’ 방식으로 보완할 계획이다.

―돌바람을 상용화할 계획은…. 젠은 10만 원대에 팔리는 것으로 아는데….

“현재로서는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혼자의 힘으로 상용화까지 하려면 집중력을 여러 군데로 분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돌바람과의 대국=임 씨와 인터뷰를 한 뒤 기자(사이버오로 6단)도 돌바람과 맞바둑을 둬봤다. 초반 포석에서 상대가 바둑 소프트웨어란 사실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잘 뒀다. 판이 짜여갈수록 형세판단과 계가가 좋다고 느꼈다. 중반전까지 화면 옆에는 이길 확률이 50%대 초반에서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돌바람이 이길 확률이 60%를 넘어섰다는 숫자가 나왔다. 그 순간은 돌바람이 큰 끝내기를 한 때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국기원의 고수(아마 7단) P 씨가 “어디 실력 한번 보자”며 바통을 이어받았다. P 씨는 “바둑 프로그램이 패에 약한데…”라며 일부러 패를 만들어 갔다. 결국 돌바람은 팻감 계산 등에서 실패해 이길 확률이 50% 밑으로 떨어졌다.

다시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의 이영재 타이젬 기자가 이어받아 끝내기를 점검했다. 그는 “후반 끝내기에서 작은 것을 먼저 뒀다. 끝내기 계산이 정교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끝까지 두지는 않았으나 결국 3명의 연합팀이 이겼다.

이영재 기자는 돌바람과 다시 9줄 접바둑을 뒀는데 2패 뒤 1승했다. 9줄 접바둑에서는 프로 정도의 기력이었다.

돌바람과 4점 접바둑을 둔 최문용 6단은 “보통 아마추어보다 강했다. 하지만 패가 3개가 나니까 어려워하는 듯했다”고 평가했다.

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