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한 자락
이기호 소설가
“김길부 씨, 1956년 4월 생 맞으시죠?”
검은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장부를 펼쳐 읽으며 그에게 물었다. 남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무표정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동료들과 간단한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그는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온 검은색 승용차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이건 뭐… 깔끔하군요… 자식들도 잘 컸고, 넉넉한 연금과 보험도 있고….”
검은 양복의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장부를 덮었다.
“자, 그러면… 저쪽 304호로 들어가면 됩니다.”
“이 방에서 뭘 하는 거죠?”
그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남자에게 물었다.
“그냥 쉬시면 됩니다. 식사는 때 맞춰 우리가 챙겨드릴 테고요.”
남자는 계속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곤 짧은 목례를 하곤 304호 밖으로 나갔다.
이봐요, 이봐요.
그는 몇 날 며칠째 계속, 틈날 때마다 잠긴 304호의 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304호 밖 복도에선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불을 켜줘야 할 거 아닙니까? 네? 불을 좀 켜 달라고요? 그는 이 모든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침대도, 냉장고도, 창문도, TV도 그대로였지만, 전등이 들어오지 않았다(TV는 전원은 들어왔지만, 화면은 나오지 않고 음성만 들렸다). 눈을 떠도 암흑인 방이었다. 식사 때가 되면 출입문 하단 작은 배식구가 열리고 식판이 들어왔다. 그는 소리와 손가락 감각만으로 식판을 받아들고, 그것을 먹어야 했다. 씻을 때도,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도, 그는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감각에 의지해, 느릿느릿 해나가야만 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런 처지에 놓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수십 일이 지난 어느 하루, 불이 켜졌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304호 방 안으로 직접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
“도대체, 도대체 이게 뭡니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럽니까?”
그는 검은 양복 사내 바로 앞까지 다가가 따지듯 물었다.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선생께 벌을 주는 게 아닙니다.”
검은 양복 사내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이게 벌을 주는 게 아니라고요? 이 어둠 속에서 지내는 게?”
“그러면 선생은 선생의 어머니께 벌을 주신 겁니까?”
“네? 그게 무슨….”
“잘 생각해보십시오. 불로요양병원 304호.”
그는 그제야 무언가 생각난 듯 멀거니 검은 양복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건 우리가 선생에게 주는 벌이 아닙니다. 우리도 선생처럼, 마음 편히 선생을 모시는 거지요.”
검은 양복 사내는 그 말을 마치고 다시 304호 밖으로 나가려 했다.
“저기요, 다 좋습니다. 다 좋아요…. 한데 제발 불 좀….”
“아, 그거요….”
검은 양복 사내는 커튼이 쳐져 있는 창문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은 어머님께 얼마 만에 한 번씩 찾아갔습니까? 딱 그 주기에 한 번씩 선생 어머님 마음에도 불이 켜졌겠지요. 여기도 이승과 똑같습니다. 그럼, 전 이만.”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