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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몰지 말라? 성완종, 영장심사 전날 시위성 회견

입력 | 2015-04-09 03:00:00

“2007년 박근혜 후보 대선 경선때부터 도와”… 현정부-검찰 공개 압박




1조 원 가까운 분식회계와 200억 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 정부와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64)이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8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도왔는데 내가 (전 정권 사정의) 표적이 됐다”며 현 정부와 검찰을 공개적으로 압박해 파장이 일고 있다.

성 회장은 이날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허태열 (당시) 의원의 소개로 박근혜 후보를 만났고, 그 후 박 후보 당선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고 밝혔다. 그는 “왜 내가 자원외교(비리 의혹 수사)의 표적이 됐는지 모르겠다”며 “나는 MB(이명박 전 대통령)맨이 아니다. 어떻게 MB 정부 피해자가 MB맨일 수 있겠나”라고 주장했다. 최근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이명박 전 대통령 쪽 사람으로 보도되고 있는 데 대해서도 “국회의원은 (한나라당이 아닌) 선진통일당에서 당선됐다” “MB (대통령직) 인수위원은 첫 회의 참석 후 중도 사퇴했다”며 회견 내내 ‘MB와 선긋기’를 했다.

성 회장은 직접 준비한 원고를 또박또박 읽어나가면서 자신의 혐의에 대해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자신이 설립한 장학재단이 지원하는 어린 학생들과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를 할 때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진실을 꼭 밝혀드리겠다”면서 여러 차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해외자원개발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부장 임관혁)는 성 회장이 회삿돈 200억 원을 빼돌리고 1조 원에 가까운 분식회계를 통해 부실 상태를 숨기고 해외 자원개발 명목으로 정부 융자금을 받아낸 혐의(사기 및 횡령,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위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성 회장의 폭탄 발언으로 당장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의 ‘2007년 대선 경선자금’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허 전 의원은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직능총괄본부장을 맡아 전국 직역별 지지자들을 조직화하는 역할을 했다. 성 회장은 직능단체 활동뿐 아니라 박 후보 캠프에 금전적인 도움도 준 것으로 기억하는 캠프 관계자가 많다. 박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전직 의원은 “박 대통령이 돈 문제에 관심이 없어 재력이 있는 의원들과 당원들이 돈을 모아서 어렵게 경선을 치렀고, 성 회장도 당연히 얼마간 돈을 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성 회장은 이날 본보 기자와 따로 만난 자리에서 ‘경선 자금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거냐’는 질문에 “허허, 별걸 다 묻는다”면서 웃어 넘겼다. 경선을 도와줬다는 의미가 뭔지 재차 묻자 “열심히 일을 했다는 거죠”라고 답했다.

하지만 성 회장이 2007년 박 후보 캠프에 설령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더라도 정치자금법상 공소시효(7년)는 지났다. 이 때문에 성 회장이 2007년 경선 관련 부분만 언급한 건 치밀히 계산된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현 정부를 향해 ‘나를 벼랑 끝으로 몰지 말라’는 일종의 시위성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성 회장의 측근들도 성 회장 발언이 청와대를 향한 것임을 애써 부인하지 않았다. 경남기업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점잖게 읍소를 한 것”이라며 “대통령도 이 사건을 잘 모르시는 것 같고 대통령에게도 섭섭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는 9일 오전 10시 반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한 정치권 인사는 “여야와 전·현 정부를 가릴 것 없이 인맥이 넓은 성 회장이 검찰에 들어가 어떤 발언을 할지 긴장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 회장 발언에 대해 허 전 의원의 한 측근은 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성 회장이 박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지만 경선 당시 한 사람이 아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소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성 회장이 2007년 경선과 2012년 대선 당시 후보 캠프에서 특별한 보직을 맡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최우열 dnsp@donga.com·변종국·홍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