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니시 히로미
20년 전 1월 17일 이른 아침에 발생한 고베대지진은 이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겨 멋스러운 분위기의 고베 거리를 한순간에 폐허더미 거리로 바꿔 놓았다. 아파트는 무너져 내리고, 목조가옥은 납작하게 눌렸으며, 여기저기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고속도로는 내려앉아 도로 중간에서 화를 피해 서 있던 차들은 장난감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텔레비전에 비치는 영상은 마치 영화 촬영세트 같았다. 너무나 엄청난 충격에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당시 나는 오사카에서 살고 있었다. 오사카에서 고베는 JR 전철로 약 20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 직하형 지진이어서 다행히도 오사카는 큰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고베에 사는 친구는 회사에 출근하려고 운동화를 신고 배낭을 멘 채 전철이 다니는 곳까지 1시간을 꼬박 걸어갔다고 한다. 필사적으로 도착한 오사카에서는 모두가 말끔한 옷을 차려입고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고 한다. 왠지 그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올 정도로 괴로웠다고 한다. 이웃 현이었는데도 지진 피해는 하늘과 땅 차이였던 것이다.
동일본대지진 피해지도 과연 고베와 같은 부흥을 이룰 수 있을까. 원래부터 도호쿠(東北) 지역 사람들은 끈기 있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언론 보도만을 보고 판단하자면 꾸준히 부흥을 위한 길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지금도 도호쿠를 잊지 않고 후원하고 있는 것이 한 줄기 구원의 손길이다. 그러나 인재라고 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가져온 문제는 워낙 커서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만 산적해 있고, 방사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도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전력회사와 정부가 조속히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일진일퇴의 상황만이 반복되고 있다.
이 문제가 자신들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우리에게는 그것을 확실히 지켜봐야 할 책임이 있다. 그것은 일본 전 국민의 과제이기도 하고, 넓게 보면 세계 각국이 주목하는 일본이 하나의 국가로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얼마 전, 지진 관련 신문기사 중에 원전사고 이후 배움의 터인 ‘아침 교실’을 시작한 작가 오치아이 게이코(落合惠子) 씨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지금까지 지진이 있을 때마다 원전은 괜찮을까 하고 걱정하기는 했으나 그 순간 해야 할 일을 방치했고, 결국 원전사고가 나고 말았다는 후회. 우리의 내면, 그리고 주변에서는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다. 사회문제가 잇따라 터지면서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기면 다른 일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진다. 화려한 이벤트나 비참한 뉴스 등 기억을 마모시킬 만한 재료는 끊임없이 제공된다. 그런 상황이지만, 침착하게 살다 보면 삶을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일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 자기 일에 쫓기며 마음속 어딘가에 잊어서는 안 될 어떤 것을 감춰 두고 문을 잠가 버릴 때가 있다. 그것은 그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한 누구에게나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마음속 어딘가에 품고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품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가와니시 히로미 씨는 한국에 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 주부다. 한국에서 산 지도 4년째에 접어든다.
가와니시 히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