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의 자막이 눈길을 끌었다. ‘로브스터&물고기, 그리고 친구.’ 보는 순간 웃음이 났다. ‘로브스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많은 이들이 영어(lobster)를 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로브스터는 커다란 새우류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바닷가재와 동의어다. 그런데 왜 이처럼 생경한 물건이 되었을까. 역설적이게도 외래어 표기법을 충실히 따른 결과다. 언중은 하나같이 ‘랍스터’라 한다. 그날 출연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 인명과 지명, 일반 용어 등을 사람들이 불편 없이 쓸 수 있도록 심의해 표제어로 삼은 걸 탓할 생각은 없다. 허나, 실생활에서 쓰는 용어는 외래어 원칙 못지않게 언중의 말 씀씀이를 헤아려야 한다. 로브스터의 경우 ‘바닷가재’만을 표제어로 올려두는 게 훨씬 나았다. 시간이 흐른 뒤 언중의 입말을 살펴 랍스터 혹은 로브스터를 바닷가재의 동의어로 삼았으면 될 일이다.
외래어와 외국어로 뒤덮인 우리 언어 현실을 어찌해야 할까. 외래어는 우리말로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때만 제한적으로 쓰는 게 옳다. ‘로브스터’ ‘랍스터’ 대신 ‘바닷가재’라 쓴다고 해서 그 맛이 떨어지겠는가.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