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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동아일보] 지성의 킬미힐미 Epilogue

입력 | 2015-04-09 19:53:00


좋은 배우는 기회를 만나면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드라마 ‘킬미, 힐미’에서 지성은 7개의 인격을 가진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올해 연기 대상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다른 배우들이 승승장구할 때 ‘나도 언젠가 저런 찬사를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는 그는, “내 길은 돌아가서도 한참을 달려가야 했나 보다”라고 말한다.



7개 인격을 가진 다중인격자 차도현. 그는 평소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완벽한 재벌 2세지만, 자극을 받으면 터프가이 신세기, 안하무인 여고생 안요나, 폭탄 제조가 취미인 페리 박, 자살을 꿈꾸는 사춘기 소년 안요섭, 상처를 가진 어린 여자 아이 나나, 나나의 아버지 미스터 X 등으로 변한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이 캐릭터들은 배우 지성(38)이 드라마 안에서 소화해내야 하는 역할이었다.

차도현은 그중 평범한 편에 속했지만, 아이돌 사생팬인 안요나나 시종일관 “아따, 이것이 머시여~”라며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페리 박은 배우 입장에서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 난감함은 바로 MBC 드라마 ‘킬미, 힐미’의 인기 요인이었다. 드라마는 지성의 몸을 빌려 매회 개성 넘치는 인격을 선보였고, ‘오늘은 어떤 인격이 등장할까?’ ‘지성은 새로운 인격을 어떻게 연기할까’가 관전 포인트가 됐을 정도다. 이 중에서도 입술에 핑크색 틴트를 바르고 머리에는 리본 핀을 꽂은 채, 여고생 교복(교복 스커트에 체육복 바지 레이어드 룩)을 입고는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안요나는 단연 화제였다. 오리진(황정음)을 향해, “이 기집애야”라며 눈을 흘기고, 자신이 좋아하는 오리온(박서준)이 나타나면 “오빠~” 하고 뛰어들어 뽀뽀를 하는 등 웃음을 자아내 어둡고 무거운 드라마에 균형을 맞췄다.

이렇듯 ‘킬미, 힐미’ 성공을 이끈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지성이다. 시종일관 화려한 원맨쇼를 보여주며 시청자를 울리고 웃겼던 그는 이제 7개의 캐릭터를 떠나보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드라마 종영 일주일 후,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10~20대 팬들도 많이 생겼는데, 기분이 어때요.
아이돌이 아닌데도 아이돌급 대우를 받고 있어요. 오리진의 아역을 했던 친구가 제게 “지성 오빠라고 부르는 게 나아요, 삼촌이 나아요?”라고 물어봐서 깜짝 놀랐죠. 제가 그 아이 아빠보다 나이가 많을 수 있거든요. 그냥 “오빠라고 불러 달라”고 했어요. 흐뭇하죠. 제가 또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아 보겠어요. 작품을 통해 보내주는 찬사니까 행복하게 받으려고요.

드라마에서 요나가 바른 틴트가 완판됐어요. 남성 최초로 여자 화장품을 완판시킨 소감이 어떤가요.
(완판됐다는 말에) 어이없었어요. ‘뭔 이야기지?’ 했죠. 물론 좋아요. 요나를 연기할 때, 틴트는 정말 중요한 무기였어요. 뛰는 장면에서도 발라가면서 뛰었죠. 그 덕분에 입술에 무언가 바르는 행위 자체가 익숙해졌어요(웃음).

차도현 역 캐스팅에 여러 배우들이 거론된 터라 출연을 결심하기까지 고심했을 것 같아요. ‘킬미, 힐미’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이 작품이 제게 들어오기 전에 시놉시스를 보면서 ‘나 시켜주면 잘할 텐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한창 다른 배우들 캐스팅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 때였죠. 그러다 (배역이) 뜬금없이 제게 왔어요. 그럼 해야지 어떡하겠어요(웃음). 이번 드라마를 연출한 김진만 PD님과 예전에 옴니버스 드라마 ‘떨리는 가슴’을 함께했는데, 그 때 따뜻한 기억이 있어요. ‘감독님이라면 내 진심을 고스란히 담아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정말 생각했던 대로 제가 작품 속에서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잘 만들어주셨어요.



다중 인격 연기하며 스스로도 치유받아
1999년 드라마 ‘카이스트’로 데뷔한 지성은 ‘올인’(2003),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004), ‘뉴하트’(2007), ‘로열패밀리’(2011), ‘대풍수’(2012), ‘비밀’(2013) 등에 출연하며 성실하게 연기 경력을 다졌다. 하지만 작품의 흥행 성적이나 연기력에 비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그는 ‘지성의 재발견’이라는 찬사를 안긴 ‘킬미, 힐미’의 7가지 캐릭터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차도현의 인격이기도 하지만, 지성 본인의 숨겨진 모습이기도 했다. 어릴 적 전남 여수에 살던 기억은 페리 박을 만들었고, 어딘가 숨겨져 있던 여성성은 안요나를 불러냈다. 본인조차 놀랐던 자신의 7가지 모습에 대해 지성은 할 말이 많다.


7가지 캐릭터를 연기하며 힘도 들었지만, 연기의 묘미도 느꼈을 것 같은데요.
각기 다른 캐릭터라고 해도, 한 사람이다 보니 연관성이 없지 않아요.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 자살을 하려는 요섭이, 유쾌하고 발랄한 요나,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어른 페리 박, 불의나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나타나는 신세기, 어릴 적 학대의 기억을 갖고 있는 나나와 미스터 X는 모두 차도현이라는 인물의 또 다른 모습이에요. 다양한 인격들이 발현된 이유가 있는데, 그걸 알고 있으니 촬영이 어렵지 않았죠. 이번 작품을 통해 인생에 대해 많이 배웠고 스스로도 치유가 됐어요. 이제 곧 아이도 태어나는 만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됐죠. 촬영하면서 아프고 힘들고 울컥 울컥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참 행복했어요.

누구와의 이별이 가장 힘들었나요.
드라마에 뒤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빠른 시간 안에 각 캐릭터를 준비해야 했고, 오히려 (너무 많으니까) 버릴 것은 버리면서 마음을 내려놓았어요. 덕분에 편하게,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연기할 수 있었죠. 솔직히 제가 언제 요나처럼 여자 교복을 입어보고, 신세기처럼 아이라인을 그리고 페리 박처럼 사투리를 써보겠어요. 그래서인지 캐릭터 하나하나가 다 기억에 남아요.

같은 시간대 드라마(SBS ‘하이드 지킬, 나’)에 비슷한 캐릭터도 있었고, 드라마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어요. 연기하면서 부담도 있었을 것 같아요.
소재가 같아서 이런저런 말들이 있었죠. 하지만 부담은 전혀 없었어요. 표절 의혹에 대해서는 제가 드릴 말씀이 없고, 어쨌건 진심을 담기 위해 노력했고 좋은 드라마를 남기고자 끝까지 애를 썼어요. 저도 어떤 드라마에서는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던 적이 있고, 언제 시작해서 어떻게 끝났는지 모를 정도로 반응이 없었을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겐 ‘킬미, 힐미’가 더 소중해요.

황정음 씨와는 ‘비밀’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을 맞췄는데, 두 작품 모두 호평을 받았네요.
저희끼리 ‘우리가 무슨 인연이지?’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남녀 배우가 두 작품을 연달아서 같이 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 거든요. 연기를 할 때 상대 배우와의 호흡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고, 특히 차도현의 7가지 캐릭터는 상대 배우가 받아 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역할이었어요. 도현이와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신세기가 나타나서 ‘기억해. 내가 너에게 반한 시간’이라고 말하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리액션을 잘해준 정음 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혹시 또 한 번 함께할 생각도 있나요.
언제든지요. 그렇잖아도 정음 씨가 ‘결혼하고 나서 다시 만나요’라고 하더군요.

코믹한 장면도 많았는데, 애드리브도 있었나요.
요나와 페리 박은 거의 애드리브였어요. 작가님이 틀을 써주시면 제가 대사를 만들었죠. 제가 원래 그런 걸 못하는 편인데 캐릭터에 집중하니까 하게 되더라고요.

명대사를 꼽는다면.
요섭이가 마지막에 했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대사는 불어로 하면서도 마음에 와 닿았어요. 요섭이 캐릭터는 힘들게 사는 친구들이나 나약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줬다고 생각해요. 신세기의 ‘기억해. 내가 너에게 반한 시간’도 명대사로 꼽을 수 있겠네요. 팬들에게 이 대사를 하면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지성 씨의 연기를 두고 연말 ‘연기 대상감’이라는 칭찬도있었는데, 본인은 어떤가요.
연기에 대해서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 저 스스로는 배우로서 존재감을 확인한 사실만으로도 만족해요. 언론이나 시청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연기자들을 보며 ‘나도 저런 칭찬을 들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 길은 돌아가서도 한참 달려갔어야 했나 봐요.


드라마 ‘킬미, 힐미’에서 지성이 연기한 7가지 인격은 저마다 매력이 넘쳐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 투표가 진행될 정도였다.


6월 태어나는 딸, 아내 이보영 닮았으면…
지성은 이보영과 6년간의 공개 연애 후, 2013년 결혼했다. 부부는 그동안 예쁜 딸을 낳고 싶다는 바람을 밝혀왔는데, 그 소망이 오는 6월 이루어진다. 지성은 딸을 기다리며 “아내를 닮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혹시 잃은 것도 있나요.
한 가지 죄송한 마음이 드는 건, 드라마는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것인데 도현의 인격이 주가되다 보니 다른 부분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 작품에서 잘 놀 수 없었을 거예요. 또 ‘드라마가 끝났는데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지?’란 생각에 무서운 마음도 들어요. 시간이 지나서 아플 수도 있고, 우울증이 올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그러기엔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리자 생각하고 있어요.

이보영 씨가 ‘킬미, 힐미’ 촬영장에 방문했었다고 하던데요.
요나가 나오는 장면을 직접 보고 싶다며 한 번 찾아왔어요. 마침 교복을 입고 뛰어가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보영씨가 그 모습을 보더니 ‘되게 재밌을 줄 알았는데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가장이 여자 교복 입고 길거리를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뭉클했다’고요. 그다음부터 집 안에서 대우가 달라지더라고요.

이보영 씨가 황정음 씨와의 키스신에 대해서는 뭐라고 얘기하던가요.
별 반응이 없었어요(웃음).

극 중 차도현의 ‘매너 손’도 화제였어요. 오리진을 차에 태우는
장면에서 머리가 부딪히지 않도록 손으로 보호해주던데. 저도 드라마를 보고 알았어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여자를 배려해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평소 엄마나 아내와 함께 걸을 땐 제가 차도 쪽으로 서고, 지붕이 낮은 장애물이 있으면 머리 부딪칠까 봐 손으로 보호해주는 습관이 있는데, 그게 연기로 나왔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을 보고 아내가 ‘나한테도 저렇게 해?’라고 물어봤을 땐 정말로 어이가 없었어요. 항상 그렇게 해주는데 손이 위에 있었기 때문에 몰랐나 봐요(웃음).

곧 아빠가 되는데, 아이가 많이 기다려질 것 같아요.
아이와 빨리 만나고 싶은데 시간이 안 가요. 커가는 게 보이니 신기해요. 예정일이 6월 말인데 그때가 되면 또 한 번 눈물을 펑펑 쏟아낼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킬미, 힐미’가 중국에선 아직 정식 방영 전임에도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지성 씨는 ‘수요일의 남자’로 불린다고 하더군요. 곧 한류 스타가 될 조짐인데 기분이 어떤가요.
그다지 실감은 나지 않지만 중화권으로 갈 기회가 온다면 대한민국 배우로서의 책임감은 잊지 않겠습니다. 중국에서 인기가 많다는 건 대단한 일이잖아요. 인기에만 만족하지 않고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고 싶어요. 사실 우리나라 배우들이 잘 생기고 연기도 잘하잖아요(웃음). 자부심을 느껴요. ‘킬미, 힐미’가 중국 대륙을 흔드는 그날이 언젠가 오겠죠?



기획 · 김명희 기자|글 · 두경아 자유기고가|사진 · 나무엑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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