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임지섭-한화 권혁(오른쪽). 스포츠동아DB
● “볼넷 준다고 지는 게 아니다”
LG 유망주 임지섭 컨트롤 불안해 부담
류택현 코치, 노모 일화로 자신감 심어
● “스트라이크 아닌 아웃카운트 잡아라”
김정준 전력분석코치 조언으로 큰 도움
#1. 임지섭(20)은 지난해 LG가 1차지명한 유망주 투수다. 좋은 체격조건(키 190cm·몸무게 94kg)에다 힘도 타고났다. 그러나 아직은 미완의 대기. 문제는 제구력이다. 자신만의 투구폼을 완성하지 못해 컨트롤이 오락가락한다. 임지섭은 늘 자신의 컨트롤 불안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공을 던져왔다.
지난 시즌 중반부터 양상문 감독의 지시에 따라 임지섭 전담코치가 된 류택현 코치는 고민했다. 투구폼도 교정할 데가 많지만, 마음이 여리고 순한 임지섭에게 일본의 전설적인 투수 노모 히데오의 얘기를 들려줬다.
노모는 트레이드마크인 ‘토네이도 투구폼’으로 일본프로야구는 물론 메이저리그도 평정한 대투수지만, 어린 시절부터 고집스럽게 연마한 그 독특한 투구폼 때문에 설움을 겪었다. 중학교 졸업반 때 야구명문 긴키대학부속고에 테스트받으러 갔으나 컨트롤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고, 고교 졸업반 때 신인드래프트에서도 제구력에 의문부호가 달리면서 12개 구단의 외면을 받았다. 결국 노모는 사회인야구팀인 신일본제철에 입단했고, 1988서울올림픽에 일본대표로 참가해 맹활약하면서 일본 전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긴테쓰 버펄로스에 입단해 일본 최고 투수로 성장했다. 볼넷 3개로 무사만루를 만들고도, 삼진 3개를 잡아 위기를 벗어나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임지섭은 ‘볼넷을 내줘선 안 된다’는 지나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3B로 몰리면 볼넷을 내주지 않기 위해 멘탈이 굳어지고, 팔이 말려들었다. 그래서 류 코치는 노모의 얘기를 전하며 심리적 여유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애썼다. “볼넷을 준다고 지는 게 아니다. 볼넷 3개를 주면 삼진 3개를 잡으면 된다”는 노모의 얘기를 곁들였다.
#2. 한화 권혁(32)도 2002년 삼성에 입단할 때부터 임지섭처럼 좋은 체격조건과 위력적인 구위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 역시 항상 컨트롤을 지적받곤 했다. 그가 볼넷을 내주면 주변에선 “한가운데 꽂아도 타자가 치지 못하는데 왜 볼넷을 내주느냐”며 진심어린 조언을 하곤 했다. 올해로 프로 14년째. 그는 그동안 “반드시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러나 마운드 위에서 그런 생각을 할수록 몸은 굳어졌고, 오히려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곤 했다.
지난 시즌 삼성에서 패전처리 투수로 전락했던 그는 올 시즌 한화 불펜의 핵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승리가 필요한 경기엔 가장 먼저 호명되는 투수. 스스로 “비 오는 날이 쉬는 날”이라고 농담할 정도로 거의 매 경기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그만큼 ‘야신’이 그를 신뢰한다는 방증이다.
권혁의 변신에는 김정준 전력분석코치의 한마디가 큰 울림으로 작용했다.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하지 말고, 아웃카운트를 잡으려고 해라.” 한화 이적 후 뭔가 보여주기 위해 공 한 개마다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덤벼드는 그에게 ‘좀더 여유 있게 승부하라’는 주문. 권혁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내 시야가 좁았다는 것을 느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다. 이제 스트라이크와 싸우는 게 아니라 비로소 타자와 상대하게 됐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힘을 지녔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행동이 바뀌면 결과가 달라진다. 때론 정공법보다 우회작전이 선수의 생각과 운명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