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앞두고 개편 잇달아
신세계그룹은 올해 1월부터 기존의 6단계 직급(사원-주임-대리-과장-부장-수석부장) 체계를 4단계로 간소화했다. 새 직급에는 ‘밴드제’를 도입해 △사원과 대리는 밴드 4단계 △대리∼과장 4년차는 밴드 3단계 △과장 5년차∼부장 4년차는 밴드 2단계 △부장 5년차∼수석부장은 밴드 1단계가 된다. 이 중 밴드 2∼4단계 직원의 호칭을 모두 ‘파트너’로 통일했다.
신세계그룹에서는 대졸자가 입사하면 곧장 사원이 되고 2년 뒤 주임, 3년 뒤 대리, 3년 뒤 과장, 6년 뒤 부장, 6년 뒤 수석부장이 되는 게 정상이었다. 승진에서 누락하지 않아도 입사한 뒤 임원 직전 직급인 수석부장이 되기까지 꼬박 20년이 걸렸다.
롯데그룹 역시 이미 ‘사원-대리-과장(갑·을)-차장-부장’ 체제를 ‘실무자-책임(과장급)-수석(차·부장급)’으로 간소화한 데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임원 직급 체계도 기존 7단계에서 5단계로 간소화했다. 이 역시 정년 연장과 무관치 않다. 포스코도 9, 10단계에 이르던 일반 직원 직급을 6, 7단계로 단순화했다.
기업들이 이처럼 직급 구조조정에 나선 속내는 복잡하다. 전통적으로 국내 기업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승진하는 연공서열형 승진 체계를 고수해 왔다. 고성장을 구가하며 우수 인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던 대기업들은 승진 제도를 통해 인재 이탈을 막았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승진할 자리가 줄어든 데다 정년까지 연장되면서 과거의 패러다임이 통하지 않게 됐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특히 승진 적체로 부장과 차장들이 다수인 ‘역(逆)피라미드형 구조’가 된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머리를 싸매게 됐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직급이 높은 고참들이 실무보다는 지휘를 더 선호하는 국내 기업 풍토에서는 기업의 인건비 지출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호칭을 파트너 등으로 바꾸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예전에는 직위와 직급이 일치해 호칭에서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체제에서는 직위, 직급, 직책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이제는 직위는 부장이어도 직급은 차장급, 직책은 영업팀원인 사례가 생기고 있다.
한편 기업의 문화를 개선하지 않고 ‘무늬만 호칭 바꾸기’는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한화그룹은 3년 전 도입한 ‘매니저’(사원∼차장) 호칭을 올해 3월 없애고 직급 체계를 부활시켰다. 직원들이 외부 인사를 만날 때 매니저라고 소개해도 직급을 되묻는 등 애로사항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김유영 abc@donga.com·김범석·최예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