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물가상승률 동시에 ‘뚝’
올해 한국 경제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치가 계속 내리막길을 타면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지난해 4월만 해도 4%를 웃돌았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년 만에 3%대에 간신히 턱걸이를 했다. 적지 않은 국내외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은 이미 2%대 성장률까지 거론하고 있다. 물가상승률도 1%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사실상 ‘제로 물가’ 시대에 접어들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곧 정상적인 경기 흐름을 되찾을 것”,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는 과도하다”면서 지나친 비관론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경제 주체의 심리 위축이 자칫 추가적인 경기 둔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내성이 약해지고 회복은 더뎌진 한국 경제가 언제쯤 정상 궤도를 되찾을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추락하는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기준금리를 세 차례 내리고 재정·금융 수단을 이용한 각종 경기부양책을 실행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도 경제의 구조적인 하강 추세를 되돌리지 못했다. 정부의 인위적 개입 없이 소비나 투자가 살아날 경제의 자생력이 워낙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구 고령화와 막대한 가계부채 같은 구조적인 요인들이 정부 정책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다. 9일 한은이 내놓은 전망치에는 착시(錯視) 효과도 있다. 한은이 전망한 올해 3.1%의 성장률은 연구개발비나 문화콘텐츠 제작비 등을 국민소득에서 제외한 2014년 이전 통계기준을 적용하면 2%대 후반의 성장률에 해당한다. 올해 경기가 겉으로 보이는 전망치보다 더 안 좋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가는 더 심각하다. 만약 연초 담뱃값 인상이 없었다면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거의 제로 수준인 0.3%가량이 됐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같은 성장과 물가의 동반 침체는 가계 경제는 물론이고 정부의 경제 정책에도 주름살을 안겨 주고 있다. 우선 가계 측면에서 보면 기업들의 경상이익이 줄어들며 근로자들의 임금상승률이 떨어질 우려가 커졌다. 이는 물론 내수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로서는 가뜩이나 부족한 세금이 더 안 걷힐 수 있다. 세수(稅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상성장률(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것)’은 올해 4% 안팎에 머물며 정부가 목표로 한 6%에 크게 미달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경상성장률 목표치를 4.5% 안팎으로 끌어내릴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경제 주체들에 심리적 충격 우려”
성장률 목표치를 3.8%로 잡고 있는 정부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경기를 감안할 때 정부도 성장률을 내릴 필요가 있지만 그럴 경우 경제 정책의 궤도를 크게 조정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날 이주열 한은 총재가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재정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줘야 한다”며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간접적으로 주문한 것에 대해서도 정부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재정 조기집행과 금리인하의 효과를 검토한 뒤 추경을 포함한 후속 대책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 경제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과감한 정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0.9%라는 물가상승률은 디플레이션을 연상시키는 수준이라서 경제 주체들의 심리적 충격이 클 것”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강도도 세져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그나마 금리인하 등 통화·재정 정책이 없었다면 올해 성장률은 2%대 중반까지 밀렸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적극적인 통화·재정 정책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이날 한은이 경제 전망을 또다시 크게 수정하면서 기존 전망치의 오류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10∼12월) 경기가 예상과 달리 크게 부진했고 저유가도 오래 지속돼 성장 및 물가 전망치가 크게 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