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비리 혐의 성완종 회장 자살]성회장은 왜 목숨 끊었나
즐겨 다니던 산길에서… 9일 오전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서울 종로구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에서 300m 떨어진 장소에서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오후 경찰들이 현장을 수습한 뒤 시신을 옮기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0억 원대 회사 자금을 빼돌리고 분식회계를 통해 정부 융자금을 받아낸 혐의로 이날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던 성 회장은 법정이 아닌 서울 북한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가족은 성 회장이 사라진 사실을 3시간 후에야 눈치 챘다. 운전기사 A 씨는 집 안에 있던 유서를 발견한 뒤 “회장님이 밖에 나갔는데 보이지 않는다”며 오전 8시 6분 112에 최초로 신고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성 회장의 장남(34)도 청담파출소를 찾아 재차 신고했다. 남겨진 유서에 “충남 서산 어머니 묘소 옆에 묻어 달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오전 8시 30분경 성 회장의 휴대전화 신호를 포착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인근이었다. 기지국을 통한 휴대전화 신호는 계속 움직였다. 평창동에서 인근 정토사, 북악터널, 형제봉 능선까지 이동했다.
이날 경찰 1300여 명과 인근 군부대 장병, 헬기 2대까지 동원됐지만 성 회장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정확도가 훨씬 뛰어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적용되지 않는 일반 폴더형 휴대전화라 기지국 신호에만 의존해 위치를 찾아야 했다. 기지국 연결 범위가 넓어 인근 2∼3km 반경을 모두 수색해야 하기 때문에 경찰은 평창동과 북한산을 폭넓게 뒤졌다. 계속 움직이던 휴대전화 신호는 오후 1시경부터 이동 없이 고정됐다. 경찰 관계자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지만 성 회장이 목숨을 끊은 시점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신은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 인근 산책로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성 회장이 평소 이 산책로를 즐겨 걸었다는 단서를 토대로 수색견 5마리를 투입했다. 매표소 인근 300m 지점 산책로에서 오른쪽으로 30m 더 들어간 지점의 나무에 목을 맨 성 회장을 발견했다.
○ ‘억울함’ 호소, 극단적 선택 징후 보여
성 회장 주변에서는 그가 이미 극단적 선택을 할 징후를 보였다고 말한다. 검찰 수사로 경남기업이 세 번째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회생 불가능’ 상태에 빠지고, 자신마저 구속 위기에 처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의미다.
성 회장의 한 지인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고 상심한 상태에서 검찰 수사가 한국석유공사 등 사업 관계자와 주변 인물들로 뻗어갈 조짐을 보이자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불안정한 감정이 실제 행동으로 표출된 적도 있다. 3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할 때는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을 뿌리치며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고, 8일 기자회견 말미에는 “(자원개발 사업 실패로 인해)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 목숨을 걸고라도 보답(보상)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달 초 모친의 기일에는 친동생과 함께 충남 서산의 모친 묘소를 찾아 통곡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재명 jmpark@donga.com·조건희·이샘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