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고등학생이 대학생으로 바뀌면서 달라지는 건 EBS 영어 문제집이 토익 문제집으로, 국영수 내신 경쟁이 학점 경쟁으로, 학교생활기록부 비교과 관리가 스펙 쌓기로 바뀌는 정도랄까. 출석부에서 출(出) 자보다 결(缺) 자가 많은 걸 청춘의 패기인 줄 알았던 과거 대학생들과 비교하면 수행 과제가 너무나 많은 요즘 대학생들은 딱한 처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근래 만난 몇몇 교수는 “요즘 대학생들은 공부를 제대로 안 한다”고 말했다. 4년제대와 전문대, 서울 소재 대학과 지방대를 가릴 것 없이 공통적으로 나온 얘기다. 대학생들이 취업 준비 때문에 새벽부터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산다는데…. 의아해 물어보니 다양한 사례가 나왔다.
그간 학부 강의만 하다가 이번 학기부터 대학원 강의를 맡게 된 행정학과의 B 교수는 지난달 첫 수업 시간에 신입생들에게 대학원 진학 동기를 물었다. 취업난의 도피처로 대학원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기에, 학생들에게 어떻게든 동기 부여를 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학생들은 대부분 행정학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라는 식의 평범한 대답을 이어 갔다. 20대 중반이나 된 성인들이 구체적인 장래 계획이 없다는 데 슬슬 암담해지던 B 교수는 마지막 대답에 결정적으로 무너졌다. 소위 SKY 대학을 나온 학생의 대답은 “부모님이 가라고 하셔서”였다.
교양학부 소속 C 교수는 대규모 강의에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만지작거리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강의 내용을 메모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토익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공모전에 낼 작품을 만드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이었다. C 교수는 “요즘 일부 학생은 인문학 강의 시간에는 취업 준비하고, 면접에서 인문학이 중요해진다고 하면 인문학 특강을 찾아다닌다”면서 “TPO(시간, 장소, 상황)에 따른 판단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저런 사례를 종합해 보면 대학생들 사이에서 공부의 양은 늘었지만 학업의 질은 떨어지는 경향이 생기는 것 같다. 교수들은 그 원인으로 대학생들의 의존성과 불안감을 꼽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코치에 따라 학원 시간표대로 움직인 아이일수록 대학생이 되어도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매 순간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할 시점인지에 대한 판단력도 흐려진다. 다들 취업을 하려면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하니 불안한 마음에 떠밀려 바지런히 움직일 따름이다.
어린 학생들의 사교육 양극화만큼이나 다 큰 학생들의 자기주도력 양극화가 우려된다. 세상은 날로 복잡하고 치열해지는데 이를 뚫고 나갈 자기만의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지는 무늬만 어른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