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홍수용 기자의 죽을 때까지 월급받고 싶다]빨간불 경매시장, 노란불 매매시장

입력 | 2015-04-13 03:00:00

3월 경매시장 아파트 낙찰가…감정가의 92%선… 강남은 100%
전문가 “이성적 가격한도 넘었다”
일부지역은 매입도 이미 위험수위




홍수용 기자

경매 컨설턴트들에게 입찰 마감 전 60분은 골든타임이다.

이들은 이 중 55분 동안 입찰법정 맨 앞줄을 ‘매의 눈’으로 노려본다. 이 앞줄에는 입찰예정물건자료가 놓여 있다. 이들은 사람들이 자료를 열람하는 모습을 모니터링한다. 3명이 열람했다면 실제 입찰자는 3배인 9명 정도라고 본다. ‘선수’들은 열람자 표정까지 분석한 뒤 마감 5분 전 입찰가를 쓴다. 분석이 얼마나 정확한지 수억 원짜리 아파트 입찰가격을 2순위자보다 고작 몇십만 원 더 쓰고 낙찰받기도 한다.

서울의 한 경매법정은 지난달 말부터 이 앞줄 열람석을 없앴다. 그 대신 입찰물건을 검색할 수 있는 컴퓨터 12대를 설치했다. 누가 무슨 물건을 검색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선수들의 관찰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머지않아 집에서 인터넷으로 경매를 할 때가 올 테니 바야흐로 경매 대중화 시대다.

대중화는 반갑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9일 오전 기자가 방문한 서울중앙지방법원 4별관 211호 경매법정에선 이런 조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입찰 시작 시간인 오전 10시까지 154개 좌석은 반도 차지 않았다. 부동산 몇 건의 매각기일이 연기됐다는 공고가 벽에 붙었다. 선수들이 “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매각을 미룬 것”이라고 수군댔다.

10시 반이 넘자 입찰봉투를 경매 집행관에게 내는 사람이 급격히 늘었다. 마감 10분을 남기고는 수십 명이 줄을 섰다. 마감을 넘긴 11시 15분경 중년 남성이 집행관 앞으로 뛰어가더니 봉투를 받아달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경매가 절실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정작 놀랄 만한 일은 봉투를 개봉하는 낮 12시경 벌어졌다. 서울 강남의 1층 아파트 낙찰자를 발표하려던 집행관 표정이 순간 얼어붙은 듯했다. “사건번호 2014타경○○○○ 입찰자 27명 모두 앞으로 나오세요.” 맙소사, 경쟁률이 27 대 1이었다. 낙찰가격은 9억5000만 원으로 감정가(8억5000만 원)를 뛰어넘었다. 올 2월 이 아파트 로열층이 9억7500만 원에 거래된 점을 감안하면 1층 9억5000만 원은 시세와 거의 같다. 지켜보던 강은현 EH경매연구소장은 “이건 경매가 아니다. 이성적인 가격한도를 넘어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즘 주택 경매시장의 대체적 흐름이 이렇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대법원경매정보시스템에 따르면 3월 경매시장에서 아파트 낙찰가격은 감정가의 92% 선(낙찰가율)이었다. 지난해 말 낙찰가율은 84%였다. 서울 강남구 아파트는 3월 낙찰가율이 100%로 딱 감정가격이다. 강남 아파트는 경매나 매매나 별 차이가 없다.

강 소장 말대로 이건 정상이 아니다. 경매는 일반 매매시장에 비해 채권채무 관계가 얽혀 있고 집을 인수하기 전 세입자를 내보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낙찰가가 매매가보다 최소 5% 이상 싸야 남는 장사다. 이 통설이 무너진 순간 ‘시장은 과열’이라는 진단이 가능하다.

아파트 도매시장 격인 경매에 이미 빨간불이 들어왔다면 매매시장도 과열 가능성이 작지 않다. 지금 일반 매매에는 노란불이 켜진 정도라고 보인다.

2013년 10월 이 칼럼을 시작할 때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자. 집을 사야 할까? 1년 반 전에는 ‘서둘러 사라’고 조언했다. 이어 3개월 전에는 ‘경매로 사거나 일반 매매의 급매물을 사라’고 했다.

언제까지 사야 하는가?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어떤 기업이든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려면 소비자가 보는 제품의 가치가 제품 가격보다 높아야 한다. 가격이 2000만 원인 자동차를 팔려면 소비자가 이 자동차의 가치가 2000만 원 이상이라는 데 동의해야 한다. 지금 일부 부동산은 호가(呼價) 위주의 제품 가격이 소비자들이 동의하는 가치 이상이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미안하지만 지역에 따라, 개인 상황에 따라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 한국 경제에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미국이 하반기에 금리를 올리면 한국에서 글로벌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 이건 시장의 컨센서스(합의)다.

9일 경매법정에서 한 초보자가 입찰가격을 쓴 입찰표를 봉투에 넣지 않고 경매 집행관에게 쑥 내밀자 집행관은 한숨을 푹 쉬었다. “집행관 생활을 오래 했지만 입찰표를 내 손으로 봉투에 넣기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초보들이 몰리면 시장은 끝물이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