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A 흰 E 붉은 I 초록의 U 청색의 O, 모음들이여/나는 언젠가 너희들의 내밀한 탄생을 말하리라….”
프랑스 19세기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모음시’입니다. 소리만으로 구성된 알파벳 모음에서 엉뚱하게도(?) 색채를 읽은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감각들 사이에 연관을 짓는 것을 ‘공감각’이라고 합니다. 특히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일수록 공감각이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1872~1915)은 특정 음높이가 특정의 색채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C음은 빨강, D는 노랑, A는 초록이라는 식이죠. 이 음이 대표하는 C장조 D장조 등 조(調)도 이런 색채와 결부된다고 생각했습니다. 1910년 작곡한 ‘프로메테우스:불의 시’에서는 아예 이 색채들을 내뿜는 ‘색광(色光) 피아노’를 사용해서 관객이 자신과 똑같이 색채를 느끼도록 했습니다.
소리에서 색을 느낀 것 외에도 스크랴빈은 여러 점에서 독특한 작곡가였습니다. 신을 내적 직관에 의해 직접 체험한다는 이른바 ‘신지학(神智學)’에 몰두했고, 화음을 9개까지 겹쳐쌓는 독특한 화성법을 선보였습니다. 낭만주의 이전의 음악 문법을 송두리째 해체한 음악도 나올 대로 다 나온 오늘날, 스크랴빈의 음악은 오히려 보수적으로 느껴질 정도이지만, 1차 세계대전 이전에 그가 기존의 음악 문법을 혁신한 방법은 다른 작곡가들과 닮지 않은 자기만의 것이었습니다.
이달 27일은 그의 타계 100주년 기념일입니다.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시벨리우스에 비해 스크랴빈에게 비춰지는 조명은 미미할 정도이지만,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16일 오후 8시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러시안 시리즈’ 리사이틀에서 스크랴빈의 피아노소나타 4번, 24개의 전주곡 작품 11, 12개의 에튀드(연습곡) 작품 8 등을 연주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