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우리 옷은 백화점서 사면서… 엄마는 옛날 옷밖에 없어요”

입력 | 2015-04-14 03:00:00

[2020 행복원정대/엄마에게 날개를]<4>“엄마처럼 살기 싫어”
딸이 보는 엄마… “엄마처럼 안 살래요” 딸들은 왜?




《 사랑하지만 닮고 싶진 않다고 했다. 딸들은 “엄마와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사이”라면서도 “엄마처럼 살고 싶진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 집 엄마는 얼마나 행복할까요’라는 질문에 유독 딸들이 낮은 점수를 주었다. 딸들에게 물었다. “왜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거죠?” 》  

“엄마를 사랑하지만 닮기는 싫어요. 엄마 인생의 대부분은 우리와 아빠의 인생인 걸요. 결혼 꼭 해야 하나요? 저는 오롯이 저를 위해서 살고 싶어요.”(김모 씨·27·전업주부 딸)

“엄마는 제가 어릴 때부터 모든 게 일로 시작해서 일로 끝나는 사람이었어요. 돈 버는 엄마는 멋있지만 엄마로선 별로예요. 그럴 바엔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낫죠. 하나만 낳든가.”(강모 씨·25·맞벌이 주부 딸)

동아일보 창간 95주년 기획 ‘2020 행복원정대-엄마에게 날개를’의 심층 인터뷰에 응한 10, 20대 딸들은 “엄마처럼 살고 싶냐”는 질문에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딸들은 엄마의 행복도(6.6)를 유독 낮게 평가했고(엄마를 제외한 가족들 평균 7.4점), ‘몇 점짜리 엄마인가’라는 질문에도 다른 가족 구성원(8.8점)에 비해 짠 점수(8.3점)를 주었다. 딸들은 가족에게 헌신적인 엄마도, 반대로 자기 일에 더 마음을 쏟는 엄마도 싫다고 했다. 문제는 행복해 보이지 않은 엄마를 보며 자란 딸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거부할 가능성도 높다는 점이다.

○ “현모양처는 싫어요”

딸들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아빠 사업 걱정, 군대 간 오빠 걱정, 제 입시 걱정 다 하시며 뭔가 안 풀리면 죄책감을 느끼세요. 우리 옷은 백화점 가서 메이커만 사 주시면서 엄마 옷은 옛날에 산 것밖에 없어요.”(임모 양·16)

“엄마는 20년 넘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요. 병원에 모시고 다니고, 약도 챙겨드려야 하고, 많이 지치셨는지 요즘엔 엄마 얼굴이 빨개지고 세포 조직에도 문제가 생겼대요.”(박모 양·16)

“엄만 우리에게 너무 감정이입을 하세요. 제 동생은 약대에 가서 어느 정도 자릴 잡았는데도 중간고사를 망칠까 봐 걱정하세요. 제가 지하철역까지 마을버스 타는 게 안쓰럽다며 차로 태워다 주시죠.”(박모 씨·27·취업 준비생)

김모 양(13)은 “엄마가 힘들 땐 힘들다고 알려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냥 봐서는 힘드신 줄 모르죠. 그러다 갑자기 버럭 화를 내실 때가 있어요. 다섯 번 혼난다면 그중 한 번은 우리가 잘못한 게 없는데 그냥 화풀이하시는 것 같아 저희도 스트레스 받아요.”

엄마의 헌신을 억압으로 느끼는 딸도 많았다.

“자식에게 과잉 사랑을 쏟는 엄마, 자식이 자기의 아바타가 되길 원하는 엄만 곤란해요.”(민모 씨·27세·초등학교 교사)

“엄마는 귀신이에요. 그렇게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요. 학원 가기 싫어 몰래 빠지고 놀러가는 것까지 다 알죠. 들키면 막 소리 지르세요. 무서운 존재예요.”(이모 양·19)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엄마는 아들은 통제를 못 하지만 딸과는 친구처럼 지내면서 조종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며 딸들의 하소연에 대해 “전업맘의 ‘억압적인 모성’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 “아빠 같은 엄마도 서운해요”

반대로 일하는 엄마를 둔 몇몇 딸들은 ‘덜 헌신적인’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모 양(19)은 은행원인 엄마가 엄해서 싫을 때가 있다고 했다. “중학교 졸업식 날 넘어져서 앞니가 부러졌어요. 괜찮으냐고 물어봐 주길 바랐는데 앞을 똑바로 안 보고 다닌다고 야단치셨죠. 약간 완벽주의자세요. 친구 엄마들처럼 일상 얘기 다하고 같이 밥 자주 먹고 그러면 좋을 텐데, 엄만 드라마 보면서 우는 적도 없어요.”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엄마를 둔 직장인 정모 씨(28)도 ‘아빠’ 같은 엄마가 섭섭할 때가 있다. “우리 엄만 TV에 나오는 따뜻한 엄마들하고 달라요. 가정은 뒷전일 때가 많아요. 사춘기를 지나며 혼란스러워해도 일에만 관심을 두셨죠. 내가 힘들 때 내 얘길 들어주는 사람은 아빠예요. 엄만 쇼핑처럼 좋은 걸 같이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죠.”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직장맘 딸은 엄마가 성취한 사회적 지위나 가정경제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엄마가 필요한 시점에 부재했다는 사실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하지 못한다. 자기중심적으로 이중기대를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은 “딸은 자신의 미래를 엄마에게 투영하는데, 엄마와 부정적 동일시를 하는 과정이 어른이 돼 가는 과정이다. 엄마는 내가 넘어야 할 산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며 함께 성장해야 하는 존재다”라고 조언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