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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세월호 1주년/사무치는 그날]막내딸 떠나보낸 아빠 윤종기씨

입력 | 2015-04-16 03:00:00

우리 솔이, 제발… 구조선 향한 절규
흰 천 아래 딸의 얼굴… 차마 볼수가 없었다




팽목항 아빠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로 막내딸 윤솔 양을 잃은 윤종기 씨가 7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매일 이 자리에서 딸의 구조 소식을 기다렸다는 윤 씨는 “딸의 빈자리가 갈수록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진도=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계절이 4번 바뀌었다. 가슴은 무너졌는데 담담했다. 도무지 현실같지 않았다. 언제 철들까 싶던 곱디고운 딸의 얼굴은 희미해졌다. 애써 기억하려고 해야만 떠올랐다. 죄스럽다. 딸을 집어삼킨 바다를 다시 찾았다. 바다는 여전히 말이 없다. 진도의 벚꽃은 사람 속도 모르고 흐드러지게 피었다. 단장(斷腸)의 고통을 담은 비명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시신을 뭍으로 옮기던 임시 선착장에서는 낚시질이 한창이었다. 따스한 봄바람에 나부끼는 색 바랜 노란 리본만이 그날을 기억하는 듯했다. 세월호 1주년을 앞둔 9일 경기 안산시 단원고 2학년 고 윤솔 양의 아버지 윤종기 씨(50)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있었다.

지난해 4월 16일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별처럼 수놓던 조명탄 아래 있었다. 차디찬 바닷속에 딸을 두고 고깃배에 서 있었다. 힘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구조선들을 향해 제발 딸을 구해 달라고 소리치는 것뿐이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분노를 참기 위해 악착같이 깨물었던 아랫입술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476명 중 304명이 뭍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날 팽목항은 온갖 분노와 절규만이 가득했다.

딸은 사고 발생 22일 만인 지난해 5월 8일 돌아왔다. 팽목항에 마련돼 있던 시신안치소에서 딸을 만났다. 보고 싶었던 막내딸이었다. 흰 천으로 덮인 여학생의 이마에 난 상처를 보고 딸임을 알았다. 어렸을 때 계단에 부딪혀 난 상처였다. 차마 천을 내려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닮은 구석이 없어졌을까 봐 두려웠다. “나만 아빠 닮았으니까 나는 언제나 아빠 편”이라고 말하던 막내였다. 23일 동안 울지 않았다. 애써 참고 있었다. 울면 딸이 슬퍼할 것만 같았다. 딸을 보는 순간 맺혔던 눈물이 흘렀다.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막상 아이 몸이 차가우니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공부 욕심이 많았던 딸이었다. 사는 것이 힘들어 여러 학원에 보내지는 못했다. 자기 방도 주지 못했다. 거실과 언니들 방을 옮겨 다니며 공부했다. 그래도 “우리 아빠 돈 많이 벌면 방 3개짜리 집으로 갈 거잖아”라며 미소 짓던 아이였다. 그런 딸이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아이라 아버지는 직업군인을 권했다. 딸은 경찰이 되고 싶어 했다. 경찰이 돼 24시간 위험에 노출될까 걱정됐다. 사고 이틀 전 딸과 마지막 저녁을 먹으면서도 딸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수학여행 가 있는 동안 제주도에서 많이 고민하고 결정할게요. 아빠.” 딸의 결정을 존중해주지 못한 것이 한(恨)이다. 말로는 고민하겠다고 했지만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겠는가.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고민하던 딸의 모습이 눈에 밟혀 숨이 막힌다.

일상이 두렵다. 딸은 아빠 밥을 좋아했다. 그런 딸을 위해 투박한 손으로 돈가스를 튀기고 계란도 말았다. 밥 때가 되면 여전히 막내딸의 밥을 그릇에 담는다. 아내는 조용히 눈물을 훔친다. ‘아차’ 싶다. 막내가 없다는 사실이 매번 새롭다. 남은 가족의 슬픔을 외면하고 계란말이를 막내의 밥공기에 얹는다. 비어 있는 자리를 향해 그래도 맛있게 먹으라고 속으로 되뇐다.

팽목항 등대 앞에 서서 한참동안 먼 바다를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다시 딸을 집어삼킨 바다를 보며 기도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막내의 친구들이 여전히 저 바닷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를 품에 안지 못한 부모의 고통을 감히 이해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 못난 아비가 막내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친구들을 고이 곁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대답 없는 파도를 향해 세월호가 인양되게 해달라고 소리쳤다. 그리운 딸에게 꼭 다시 보자고 인사하고 남은 가족들 품으로 돌아간다.

“우리 예쁜 딸 솔아! 너무 보고 싶다. 아빠 자주 내려올게, 잘 있어!”

진도=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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