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그럴듯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스판이 했기에 좋아 보일 뿐 이를 모르는 투수는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대다수 투수(심지어는 몇몇 팀 에이스조차)는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기보다는 자신의 공을 던지는 데 급급하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스판의 명언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투수는 단연 NC 손민한(40·사진)이다.
비결은 역시 타이밍이다. 손민한은 타자들의 타이밍을 갖고 놀 줄 안다.
무사 1루 볼카운트 2볼 노 스트라이크에서 대부분의 투수는 직구를 선택한다. 반드시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타자들 역시 손민한의 140km짜리 직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손민한은 아무렇지도 않게 스트라이크 존에 살짝 걸치는 체인지업이나 슬라이더를 던진다. 타자의 균형을 무너뜨려 땅볼을 유도하는 것이다. 결과는 대부분 손민한의 의도대로 병살타로 이어진다.
손민한의 천재성은 같은 구종에서도 속도 차이를 낼 줄 아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올해 손민한은 6가지 구종(직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포크볼, 투심패스트볼)을 던진다. 그냥 던지는 정도가 아니라 원하는 곳에 넣는다.
여기에 속도 조절까지 한다. 안 그래도 복잡한 타자의 머리는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A구단 전력분석원은 “손민한은 손의 감각을 타고났다. 직구뿐만 아니라 변화구의 속도 조절을 자유자재로 한다. 6개 구종을 모두 빠르거나 느리게 던질 수 있다. 그렇게 치면 12가지 구종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은 그는 무척 공격적이다. 많은 투수는 타자가 공을 때리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맞지 않으려고 코너워크에 집착하고, 그러다 불리한 카운트에 몰린다. 볼넷이 자주 나오는 이유다.
올 시즌 손민한은 19이닝을 던지는 동안 단 1개의 볼넷도 내주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허용한 볼넷은 작년 8월 8일 박용택(LG)에게 내준 것이다. 지난해까지 포함하면 29와 3분의 1이닝, 115타자 연속 무볼넷 행진이다. 손민한은 올해 3경기 모두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는데 각 경기의 투구 수는 88개, 79개, 83개에 불과했다.
손민한은 “삼진을 잡으려면 최소한 공 3개를 던져야 한다. 그런데 땅볼은 1개만 던져도 된다. 나는 긴 이닝을 소화해야 하는 선발 투수다. 삼진이 멋있어 보일지는 몰라도 땅볼이 훨씬 효율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역시 많은 투수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근 그와 상대했던 한 타자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투수가 스피드에 집착하지만 손민한 선배는 정답이 어디에 있는지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투수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