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昏君일까 名君일까… 광해군의 새 얼굴은?

입력 | 2015-04-16 03:00:00

MBC 월화사극 ‘화정’… 시청률 10%대로 쾌조의 출발




13일 MBC 월화 드라마 ‘화정’ 1회에서 광해군(차승원)이 독약을 마시고 죽어가는 선조에게 평소의 울분을 토로하는 장면. 선조와 부자지간이라기보다 정적(政敵)으로 살아온 광해군의 복합적인 내면이 부각됐다. MBC 화면 캡처

‘체천흥운준덕홍공(體天興運俊德弘功), 신성영숙흠문인무(神聖英肅欽文仁武).’

조선 15대 왕 광해군 재위 중 신하들이 광해군을 칭할 때 붙인 48자의 존호 중 일부다. 앞의 것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로에 대해, 뒤의 것은 임해군 영창대군 등을 죽이고 역모를 진압한 공에 대해 붙인 것이다. 그러나 뒷날 서인들은 인조반정의 명분으로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서인으로 폐하고 임해군 등을 죽인 ‘폐모살제(廢母殺弟)’를 내세웠다. 이렇듯 광해군의 평가는 예부터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MBC 팩션(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 사극 ‘화정’은 광해군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겠다고 나선 드라마. 13, 14일(1, 2회) 시청률이 각각 10.5%, 11.8%를 기록하며 관심을 끌고 있다.

○ 비운의 왕?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든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비롯해 최근의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서 광해군 이미지는 ‘개혁정책과 실리외교를 추구했지만 반정으로 쫓겨난 비운의 왕’으로 요약할 수 있다.

‘화정’ 1, 2회도 ‘처음부터 형제를 죽일 의도는 없었다’는 방향으로 광해군의 내면을 조명했다. 선조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 광해군은 자신을 세자로 인정하지 않는 세력과 혈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최대한 충돌을 피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묘사된다. 극중 광해군은 영창대군을 죽이려고 한 임해군의 수하들을 체포하고, 역모가 발각된 임해군을 감싸주려 한다. 차승원은 7일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뤄진 광해군과는 다른 평가를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 방영된 다른 드라마도 광해군의 긍정적인 면모를 부각한다. KBS 주말사극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서울을 버리고 도망가려는 선조에게 수성 항전을 주장하는 강단 있는 모습으로 그린다. ‘불의 여신 정이’(MBC·2013년)에서는 정이를 사랑하는 로맨틱한 인물로, 최근 종영한 KBS ‘왕의 얼굴’에서는 선조, 인빈, 임해군의 견제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이처럼 조선시대 대표적 혼군(昏君·판단이 흐린 왕)이었던 광해군의 긍정적인 면모가 부각되는 배경에는 광해군 외교·국방 정책에 대한 평가가 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내치에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도 광해군이 당시 명과 후금의 대립 와중에 전쟁을 피하려고 애쓴 사실은 한국인의 자주 (국방·외교) 콤플렉스에 호소하는 측면이 있다”며 “복수의 강대국과 인접해 있는 지금의 현실은 국제질서가 바뀌는 격변기마다 광해군을 역사에서 불러낸다”고 말했다.

○ ‘광해군 개혁 추진’ 해석 분분

그러나 광해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잘못된 사실에 근거한다는 지적도 있다. 먼저 광해군의 대표적 개혁정책으로 회자되는 것은 대동법이다. 대동법은 공납을 현물 대신 토지 보유에 따라 쌀로 내도록 한 것으로 결국 땅이 많은 지주가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된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에 따르면 광해군은 “(대동법이) 근원은 맑게 하지 않고 하류만을 맑게 하고자 한 데 가깝지 않은가. 나의 견해는 이와 다르다”며 대동법 실시를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을 저술한 오항녕 전주대 교수는 “대동법 실시는 선조 후반부터 논의됐지만 광해군은 대동법을 추진할 의지가 없었고, 방납의 폐해 등 백성들의 삶에 관심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오 교수는 광해군이 궁궐 중건 등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명과 후금 사이에서의 외교도 중립 외교라기보다는 전략이 없는 ‘눈치 외교’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당시 기득권 세력이 ‘대동법이 나라를 망친다’고 반발했는데도 광해군이 대동법을 폐기하지 않고 유지한 것은 백성에 대한 정권 차원의 배려이자 업적으로 봐야 한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