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그림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
Q. ‘위플래쉬’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음악학교의 교수가 제자를 최고의 드러머로 만들어 내기 위해 끔찍한 짓을 서슴지 않더군요. 제자들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붓는 것은 기본이고 박자를 가르쳐 준답시고 뺨을 때리기도 하지요. 결국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와중에 제자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요. 최고를 만들기 위해 제자를 학대하는 교수를 두고 인터넷에선 ‘카리스마가 있다’거나 ‘리더십이 있다’고 평가하는 의견도 보았습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인재를 키워 내기 위한 방편이라 해도 남의 인격을 무시하며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일삼는 교수를 진정한 스승이라 할 수 있을까요.
A.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위플래쉬 속 플레처 교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미친놈’입니다. ‘제자를 극한에까지 밀어붙여 최고로 만들어 내는 스승의 이야기’로 이 영화를 보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미친놈이 미친놈을 발견하여 자신과 같은 미친놈으로 복제해 내는’ 이야기라고 저는 봅니다.
인문학적 배경 지식이 풍부한 저로서는 플레처 교수의 가학적인 모습 위에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가 겹쳐지면서 모골이 송연해졌습니다. ‘자식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는 저주를 받은 뒤 그것이 실현될까 두려워 자신의 자식들을 차례로 잡아먹은 것으로 유명한 로마신화 속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처럼, 플레처 교수의 깊은 내면은 기실은 천재적인 자질을 가진 후학(後學)들을 골라 내 절벽 끝까지 밀어붙임으로써 절멸시키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요. 플레처 교수는 한계를 넘어서는 지독한 예술가가 탄생하기를 원하지만, 그는 동시에 그런 미친 예술가가 나와 자신을 잡아먹는 순간이 올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Q. ‘다이버전트’의 후속편인 영화 ‘인서전트’를 보고 나서 ‘이런 유치한 영화를 할리우드에서 왜 자꾸만 만들어 내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철없는 10대들을 노린 영화 같긴 한데요.
A. 왜 자꾸만 만들어 내겠습니까. 돈이 되니까 그렇지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애들은 똑같습니다. 아무리 잘해 줘도 늘 불만이지요. 동서고금 애들은 상처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억압을 느끼면서 스스로를 기성세대가 공고화한 시스템의 피해자로 여기지요.
미국에서 10대 관객을 노리고 기획되는 영화들은 대체로 3부작 이상 시리즈물입니다. ‘메이즈 러너’는 3부작이고 ‘다이버전트’와 ‘트와일라잇’, ‘헝거게임’은 4부작이지요. 한마디로 말해 ‘엄마한테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중학생 때부터 보기 시작해 집 나가고 싶은 마음이 핵폭발하는 고등학생 때까지 쭉 보라’는 의도이지요. 한결같이 이들 영화는 어른들이 만들어 낸 억압적 시스템이나 독재 권력에 자유 의지와 자유 사랑을 담보 잡혔던 청소년들이 모험과 도전을 통해 세상을 전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문을 하나하나 열어 가는 내용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롤플레잉게임(RPG)의 스토리텔링을 따르고 있지요.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