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욱 사진부 차장
노란 리본은 전쟁터에 나간 가족과 친구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며 서양인들이 동네 나무에 매단 것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2005년 납북자 송환 기원 운동과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무사 귀환 염원 캠페인,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행사 등에서 참석자들의 절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노란 리본을 사용했다.
동아일보의 사진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보았다.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은 사고 1주일 후인 작년 4월 23일에 처음 등장했다.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실종자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노란색 헝겊 수십 개를 거는 사진이었다. 진도와 안산의 합동분향소에서 군청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추모객에게 전달할 노란 리본을 만드는 사진도 보였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문구가 적힌 디지털 이미지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됐던 기억이 난다.
이 노란 리본 모양의 배지는 지난해 말 국회에서 사라졌다. 12월 10일 공무원연금 개혁과 4자방(4대강사업·자원외교·방산비리) 국정조사 등의 현안을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한 여야 지도부 중 누구도 이 배지를 달지 않았다. 역으로 추적해 보니 새누리당은 7·30 재·보궐선거 직후부터, 새정치연합은 12월 17일 비상의원총회부터 그 배지를 가슴에서 뗐다.
이번 주가 지나면 의원들의 가슴에서 세월호 배지가 또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4·29 재·보궐선거까지 보름 정도가 남았으니 그때까지는 가슴에 배지가 달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월호를 기억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많다. 철저한 조사를 통한 재발 방지책을 세우자는 목소리도 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세월호가 정쟁의 소재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낡은 관행은 여전한데 말이다. 남들보다 큰 리본을 단다고 해서 사회가 달라질 거 같진 않다.
노란 리본은 국민의 자발적 움직임으로 시작되었고 사회 변화의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분노는 가장 쉽고 가장 어려운 것은 성찰과 실천이다. 1년 전 진도 사고 해역에서 일주일간 취재를 한 후 서울로 돌아온 새벽, 집으로 갈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어른으로서 아이들 볼 낯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다짐, 나는 잘 지키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