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 논설위원
신중함 절제력의 상실
이 총리는 이날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성완종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 “대단히 복잡하고 광범위한 측면에서 수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전날엔 “여야 막론하고 (성 회장의) 후원금을 받았다. 이름을 공개할 수도 있다. 저는 받지 않았다”는 말도 했다. 압박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당신들도 조심하라”고 위협하는 듯한 말투였다. 자로 잰 듯한 과거의 신중함과 절제력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성 회장에 대해서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했다가 이를 반박이라도 하는 듯한 사진, 영상, 비망록이 속속 튀어나오고 있다. 같은 당의, 같은 충남 지역구 의원으로 잘 아는 게 상식적임에도 아예 선을 그으려는 태도가 ‘제발이 저려 그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 2012년 대선 지원유세에 대해서도 “혈액암으로 입원해서 관여하지 못했다”고 했다가 충남 천안시 아우내장터에서 지지 연설하는 영상이 튀어나왔다.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 데 대해선 “목숨을 담보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협박”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둔 올 1월 차남의 병역면제 의혹이 제기됐을 때 이 총리는 누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자식을 공개 검증대에 세웠다. 진료기록 제출로도 충분한 십자인대 파열이었다. 그래 놓고는 “비정한 아빠가 됐다”며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 총리는 청문회의 가혹한 검증을 선제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머리를 썼는지 몰라도 눈치 빠른 사람들 눈에는 권력과 출세를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인간형으로 비쳤다.
총리의 ‘오럴 해저드’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출국 직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의 긴급회동에서 이 총리 문제 등 현안에 관해 “다녀와서 결정하겠다.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자진 사퇴의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이 총리는 자전적 에세이집 ‘약속을 지키는 사람’에서 외롭고 불안하고 마음이 조급할 때 구명줄 역할을 해준 유흥식 라자로 주교의 말을 소개하고 있다.
“한번쯤은 긴 호흡을 하고 여유를 찾게. 한번쯤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뒤를 돌아보게.”
지금이야말로 이 총리가 스스로 거취를 돌아볼 때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