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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주년]유족들 “대통령 분향 거부”… 책상 등으로 출입구 앞 막아

입력 | 2015-04-17 03:00:00

[풀리지않는 갈등]




발길 이어진 팽목항 1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는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종교단체 행사가 열렸다. 이날 팽목항에는 해가 질 무렵까지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진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낮 12시 전남 진도 팽목항에 도착해 분향소에서 헌화와 분향을 하려 했다. 하지만 분향소 문 앞에 책상과 실종자 사진 패널들이 놓여 있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이 박 대통령의 분향을 막기 위해 가져다놓은 물품이었다. 유가족 등은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글씨로 ‘진상규명 원천봉쇄 대통령령을 즉각 폐기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분향소 입구에 걸어 놨다.

박 대통령은 함께 간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과 전 해수부 장관인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에게서 실종자들의 사연을 전해들은 뒤 발길을 돌렸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직접 만나 위로하려던 계획도 취소됐다. 박 대통령은 팽목항 방파제 앞에서 대국민 발표문을 읽은 뒤 20여 분 만에 상경했다. 박 대통령이 팽목항을 찾은 것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두 차례를 포함해 이번이 세 번째다.

박 대통령은 발표문에서 “갑자기 가족을 잃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 아픔이 지워지지 않고 늘 가슴에 남아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제 삶을 통해 느껴왔다”며 부모를 흉탄에 잃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위로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가신 분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그분들이 원하는 가족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고통에서 벗어나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박 대통령의 방문을 ‘보여주기 식 행보’라며 한목소리로 비난했다. 동생 권재근 씨와 조카 권혁규 군이 실종된 권오복 씨(61)는 “대통령이 1년이 지나도록 인양을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만 한다”며 “하루빨리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만이 실종자 가족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경기 안산시 단원고 2학년 실종자 허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51)도 “대통령이 진심으로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고 싶었으면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았어야 했다”며 “생색내듯 가족들도 없는 팽목항을 찾은 대통령이 원망스럽다”고 밝혔다.

팽목항에 머물던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이 “관 주도의 정부 행사에 들러리 역할은 하지 않겠다”며 전남 목포 등으로 흩어진 가운데 임시 폐쇄된 분향소 앞에서는 가벼운 실랑이도 벌어졌다. 분향소를 찾아 숨진 여동생의 얼굴을 보려 했던 한 일반인 유가족은 “일부러 직장에 월차를 내고 왔는데 동생 얼굴도 보지 못하게 해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발길 이어진 팽목항 1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는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종교단체 행사가 열렸다. 이날 팽목항에는 해가 질 무렵까지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진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이날 오전 열린 추모행사에는 유 장관, 이낙연 전남도지사, 이동진 진도군수 등 추모객 2000여 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실종자 가족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영숙 씨의 동생 이영호 씨(46)가 참석했다. 이 씨는 “대통령을 붙잡고 강력하게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려고 했는데 희생자 가족들이 항의의 표시로 팽목항을 떠나 아쉽다”고 했다.

이날 일반인 추모객 500여 명이 팽목항을 찾았으며, 일부 추모객은 눈물을 쏟아냈다. 광주에서 온 조순례 씨(72·여)는 “세월호 참사를 TV로만 봤고 직접 이곳을 찾아온 것은 처음이다”라며 “자식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느꼈을 고통을 현장에서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진도=박성진 psjin@donga.com /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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