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긴박한 정치권]비서실장 없이 40분 독대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후 12일간의 남미 순방에 오르기 직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와 단독으로 만나고 있다. 이완구 국무총리의 3000만 원 금품수수 의혹 등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확산되는 것과 관련해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40분간의 독대는 김 대표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것이다. 청와대 제공
○ “가감 없이 전달했다”
박 대통령이 김 대표와 국정 현안을 놓고 독대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지난해 7월 김 대표가 취임한 후 당 지도부와 함께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오찬을 하고 5분 정도 따로 만난 적은 있었지만 현안을 놓고 장시간 단둘이 마주 앉은 적은 없었다. 그만큼 당의 의견을 무게감 있게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현직 총리가 검찰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면서 이 총리의 거취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안에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결국 이 총리의 사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 “다녀와서 결정하겠다”
이날 회동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세월호 1주기라는 특수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고심 끝에 김 대표와의 독대를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박 대통령이 현 정국이 위기상황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이날 김 대표에게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를 수차례 강조하면서 이 총리의 거취까지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 총리의 사퇴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순방으로 시간을 벌면서 여론의 추이나 수사진행 상황 등을 보겠다는 의도를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애초 새누리당 내부에선 특검 도입과 이 총리의 거취를 놓고 의원총회 소집까지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회동 이후 유승민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저렇게 말씀하시면 의총은 지금 당장 할 이유가 별로 없는 것 같다”며 한발 물러섰다. 당이 나서서 이 총리의 거취를 놓고 먼저 왈가왈부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임에도 ‘진실 규명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조건하에 특검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단순히 개인의 정치자금 비리를 수사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권에 남아있는 부정부패의 적폐를 이번 기회를 통해 뿌리까지 뽑아내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이 총리가 해외 순방 기간 중 총리직에서 물러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이 총리도 이날 대정부질문에서 “전혀 흔들림 없이 국정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한 여권 관계자는 “지난해 정윤회 문건 파문이 일었을 당시에도 청와대가 당과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논의한 적은 없었다”며 “이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임박하면 이 총리 스스로 박 대통령에게 자신의 거취 문제를 밝힐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