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중인들/허경진 지음/400쪽·1만8000원·RHK

중인 화가 조희룡의 솜씨에 대한 스승 김정희의 평가는 이랬다.
“난 치는 법은 예서(隸書) 쓰는 법과 가까우니 ‘문자의 향기와 서책의 기운’이 있어야 얻을 수 있다. 화법(畵法)대로만 하려면 한 획도 긋지 않는 게 좋다. 조희룡은 내 난 치는 솜씨를 그대로 배워 화법 한 가지만 쓰는 폐단을 면하지 못했으니 이는 그의 가슴속에 ‘문자의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
중인들 역시 그 아래 계급의 튀는 재주에 대해 냉담했다. 정조 때의 농사꾼 수학천재 김영은 정확한 해시계를 만들어 어명으로 관상감에 특채됐으나 왕이 죽자 곧 벼슬에서 쫓겨났다. 7년 뒤 나타난 혜성의 운행 도수를 아무도 계산하지 못하자 다시 부름을 받았지만 일을 마친 뒤 바로 쫓겨났다. 남의 집 어린아이에게 글을 가르치다 굶어죽은 그의 원고 상자를 관상감 생도가 훔쳐갔다고 전해진다.
초반부가 심심하다. 100쪽을 넘긴 뒤부터 각 인물의 사연에 생기가 돈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모습과 별다를 바 없는 이야기들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