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우리에게는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 내어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일이 적지 않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대표적이다. 행사 자체보다도 자원봉사자들이나 운영위원들의 헌신적 몰입도 단연 칭찬 일색이었다. 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부여받은 역할에 대해 예민함과 민감성을 발휘하여 몰입하고 헌신한 결과이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크게 나아진 26년 후의 2014년 아시아경기는 역대 아시아경기 가운데 최악이라고 평하는 사람들까지 있게 되었다. 자원봉사자들과 운영위원들이 도박판을 벌이기도 하고, 셔틀버스가 오지 않아 선수들이 택시를 타고 이동하거나, 심지어는 식중독 균이 있는 도시락이 제공되기도 했다. 도시락이 배달되지 않아 선수가 굶고 출전하는 일도 벌어졌다. 정전이 되거나 성화가 꺼지는 일이 발생했다면 거의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30여 년의 세월 동안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 버린 것일까? 어떻게 되어 지금은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자조가 우리 주위를 맴돌게 되었을까?
관은 관대로 민은 민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좌파는 좌파대로 우파는 우파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시민은 시민대로 모두가 독립적 예민함을 상실한 것이 분명하다. 독립적 민감성이 유지되지 못하고 있다. 사회를 비판하는 시민들은 자기가 바로 그 사회의 책임자임을 기억하는 예민함을 상실하였다. 비판하는 자기와 책임지는 자기가 한 몸체를 이루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다. 국가를 관리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무능력과 구태의연함을 자각하는 예민함을 상실한 것이 분명하다. 그냥 월급쟁이 직장인이 된 지 오래다. 정치인들은 말해 무엇 하리. 이미 자신들이 어떤 수준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부끄러움도 없고 염치도 없다. 모두 각자의 진영 논리에 빠져 진영이 제공하는 시각으로만 무장하고 상대방을 비판하는 데에만 빠져 있다. 비판하는 자기와 스스로에 대한 책임성을 발휘하는 자기가 심히 분열되어 버렸다.
리더는 조짐을 읽는 예민함을 가진 사람이다. 조짐을 조짐으로 읽지 못하면 리더가 아니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