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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의 생각돋보기]찢어진 청바지

입력 | 2015-04-18 03:00:00


길모퉁이 새로 생긴 옷가게 윈도에 찢어진 청바지가 주렁주렁 걸려 있다. 배꼽 티는 몇 년을 못 버티고 사라졌는데 찢어진 청바지는 거의 기본 패션으로 정착한 듯하다. 내가 푸코의 철학 만화책을 내면서 에피스테메 이론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찢어진 청바지를 예로 든 것이 1995년. 그때만 해도 나는 이 유행이 곧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언 20년, 찢어진 청바지는 사라지기는커녕 기세를 더해 가고 있다.

인터넷을 얼핏 둘러보기만 해도 젊은이들의 찢어진 청바지 사랑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찢어진 청바지인 줄 알고 샀는데 아니었어요. ㅠ 반품하기도 귀찮은데 제가 한번 찢어 보려고요. 잘 찢는 방법 없나요?” 누군가가 올린 대답, “먼저 사포를 이용해서 쓱싹쓱싹 갈아주세요. 사포질이 끝나면 송곳을 가로 방향으로. 마무리는 커터 칼로 긁어 촘촘하게.”

원래 광부들의 작업복이던 것을 독일계 미국인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상용화하여 1930년대 서부 영화 총잡이들의 필수 복장이 된 청바지. 1950, 60년대 말런 브랜도가 입어 터프한 남성미의 상징물이 되었고, 90년대 브래드 피트가 입어 꽃미남의 부드러움이 가미되었으며, 2000년대에는 스티브 잡스가 입어 창조와 혁신, 그리고 정보기술(IT) 산업의 상징이 되었다. 가난한 뭄바이에서 최고 부자의 뉴욕에 이르기까지 선진국과 후진국, 부자와 빈자를 가르지 않고 애용되니 과연 진정한 세계화와 빈부 통합을 이루었고,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입으니 진정한 남녀평등을 이루었으며, 청년에서 노년까지 두루 입으니 세대를 화해시켰다. 그러나 세대 통합까지? 나이 든 사람도 청바지를 입을 수 있나?

중년 이상을 위한 청바지 광고가 웃긴다고 내가 말하자 나이로 보나 몸매로 보나 전혀 어울리지 않을 남편이 “사실은 나도 한번 입고 싶었어”라고 말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결국 아이들이 사 보내 준 청바지는 거울 앞에서 몇 번 입었다 벗기를 반복한 후 벽장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근엄한 한국의 중장년, 아니 노년의 남자들까지도 청바지를 입고 싶어 하는 로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우리는 돈이 있다고 물건을 마음대로 사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상품은 단순히 어떤 기능과 사용 가치를 가진 중성적인 물건이 아니라 사회적 코드를 지닌 차이화(差異化)의 기호이다. 그 차이는 빈부나 계급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나이의 차이이기도 하다. 개인들은 각기 개성적으로 옷을 입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속해 있는 계급이나 세대의 평균치에서 약간의 변주를 실행하고 있을 뿐이다. ‘20대의 젊은이라면 찢어진 청바지를 입을 수 있다’라는 엄격한 코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지, 특별히 발랄한 개성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상류층에 대한 모방, 생산 합리화에 따른 가격 인하, 젊음을 숭배하는 사회 분위기 등에 의해 현대인들은 부단히 자기가 속한 집단의 코드를 벗어난다. 그럴수록 자기 집단의 폐쇄적 코드를 지키려는 힘 또한 강력하다. 한없이 비싸서 아래 계층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명품의 가격 같은 것!

그러고 보면 찢어진 청바지의 유행이 그토록 지속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대 간의 코드를 이처럼 굳건하게 지켜 주는 아이템도 없기 때문이다. 뚱뚱한 할아버지도 청바지는 입을 수 있지만, 빛나는 젊음이 없이는 감히 찢어진 청바지는 그 누구도 입을 수 없으므로.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