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와 위안화의 진검 승부 AIIB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개국 공신 한신도 젊었을 때 고향에서 밥을 빌어먹으며 떠돌 았다. ‘백정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는’ 굴욕을 참아야할 때도 있었다. 때가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중국인들의 난세를 사는 방법을 이야기할 때 거론되는 대표적인 고전이다. 이런 처세관을 외교에 반영한 인물은 덩샤오핑이다. 그는 한신의 사례를 ‘도광양회(韜光養晦·재주를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라는 말로 현대화했다.
하지만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중국 외교는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시절 이미 도광양회를 벗어던졌다. 중국이 동 중국해와 남 중국해에서 영토 영유권을 주장하며 주변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잠에서 깨어난 사자’를 자처하면서 공세적 외교로 돌아선 것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이 달러에 도전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월스트리트 제국’은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휘청거렸지만 중국은 당시 9% 이상의 성장률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했다. 이후 후진타오 주석과 저우샤오촨 런민(人民)은행장은 주요 20개국(G20) 런던 회의 등에서 국제 금융 체계의 개혁을 촉구했다.
마침내 2010년 열린 서울 G20 회의는 중국의 국제통화기금(IMF) 내 쿼터를 늘리는 개혁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반대로 미뤄졌다. 뿐만 아니다. 달러, 유로, 파운드, 엔화에 이어 위안화를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에 포함시키려던 중국의 오랜 시도도 빨라야 올해 말이 되어서야 결론이 난다.
지난달 31일 신청을 마감한 AIIB에는 중국도 놀랄 만큼 많은 57개국이 창설 회원국으로 참가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대양주에 걸친 조직이 된 것이다. 앞으로 일반 회원국 가입도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은 요즘 “미국의 시대는 끝났다”며 득의양양이다. 중국은 ‘AIIB 창설 흥행’을 ‘미 금융 제국에 대한 도전’의 1단계로 보고 있다.
다음 단계는 위안화와 달러의 진검 승부이다. 현재 세계 각국의 외화보유액 중 위안화는 3%로 미 달러화 61%에 비하면 미미하다. AIIB에 미국은 불참했으나 당분간 달러화의 영향력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AIIB의 투자와 대출 등을 어떤 통화로 할지가 관심인 가운데 중국의 한 관영 잡지는 “달러화가 가장 효율적이지만 위안화와 달러화 등이 포함된 ‘AIIB 바스켓’을 구성될 것이며 여기에서 위안화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중국 주도의 금융조직은 만들었으나 달러에 비해 열세인 위안화의 현실과 앞으로의 과제를 함께 보여주는 지적이다.
중국은 빠르면 올해 중 이자율 자율화 등 국내 금융개혁도 가속화한다는 계획이다. 달러와의 결투를 위해 금융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내부 체질 개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달러와 위안화의 경쟁과 승부 속에서 세계 경제는 또 다른 활력을 찾을 것인가, 위기가 가속화될 것인가, 세계는 지금 새로운 국제 금융질서의 태동을 목도하고 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