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포기 기로에 선 방광암 환자…출산후 수술, 산모-아이 다 살려
변석수 분당서울대병원 비뇨기과장은 “방광암은 여성에 비해 남성에게 많이 발생한다”며 “고령 남성이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온다면 방광암 검사를 꼭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1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변 교수는 “당시 성 씨의 눈에는 살고 싶은 간절함, 아이도 살려야 한다는 모성애와 함께 임신 상태에서는 암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검사를 시작했지만 임신부에게는 제약이 많았다. 방광암 진단에는 컴퓨터단층촬영(CT) 이 필수인데, CT는 태아 건강에 치명적인 다량의 방사선이 나오기 때문에 쓸 수 없었다. 그 대신 내시경을 이용했다. 변 교수는 “당시 CT 없이 암을 진단하는 것은 어두운 동굴 속을 손으로 더듬으며 뭔가를 찾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환자 상황을 고려하면 아이를 포기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환자는 아이를 원했다. 변 교수도 두 사람 모두 살리고 싶었다. 변 교수는 한 달을 기다려 아이가 9개월을 채우게 되면 아이를 살릴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암 환자에게, 더구나 샘암 환자에게 한 달은 암이 치명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진행 속도가 빠른 암이라서 기다림은 도박일 수밖에 없었다.
“진단 뒤 일주일 동안 밤새 고민을 했어요. 의사가 된 뒤 이처럼 어려운 결정의 순간은 처음이었어요.”
변 교수는 병변이 크지 않고 다른 장기에 전이되지 않은 상태를 볼 때 아이와 산모를 모두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산부인과, 영상의학과의 의견도 변 교수의 생각에 힘을 실어줬다.
한 달을 기다려 출산 예정일보다 3주 앞서 제왕절개로 아이가 태어났다. 변 교수는 바로 뒤이어 CT 검사를 했고 이를 통해 성 씨의 암이 샘암이며 초기라고 확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광 제거 여부가 고민이었다. 암이 방광의 밑이나 옆 부분에 발생하면 예후가 안 좋아 들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방광을 제거하면 소장을 잘라내 새 방광을 만들어야 했다. 또 평생 소변 주머니를 차고 생활해야 해 환자의 불편이 크다. 그는 “전공의 시절, 30대 여성 방광암 환자가 평생 소변 주머니를 차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성 씨의 방광을 보존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변 교수는 1년에 전립샘(전립선), 신장 등 비뇨기과 암 수술을 300건 이상 집도한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재직한 12년 동안 암 수술 건수가 3000건이 넘는다. 그중에서도 성 씨 같은 환자는 평생 다시 만나기 어려운 경우라고 말한다.
“젊은 여성이 방광암 중 샘암에 걸리는 경우가, 그것도 임신 중 발생한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2년 전 신장암에 걸린 30대 초반 임신 중기 여성은 아이와 산모 모두 살리지 못했어요. 성 씨의 경우는 의료진의 적절한 판단과 하늘의 도움으로 좋은 성과를 낸 것 같습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