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인상담센터의 이호선 교수가 본 영화 ‘장수상회’
9일 개봉한 영화 ‘장수상회’는 70대 성칠(박근형)과 금님(윤여정)의 어쩌면 인생에서 마지막일지 모를 사랑을 그린 작품. 아울러 많은 노년층이 겪고 있는 고통인 치매를 주요한 소재로 다뤘다.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인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는 “그간 치매는 국내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둡게만 그려지는 게 불만이었는데 ‘장수상회’는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뭣보다 가족과 지역사회가 치매 노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함께 대처하는 분위기를 이 영화가 가진 큰 장점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영화에서 성칠이 평생 일하던 슈퍼마켓에서 그냥 일하게 하고, 사람을 몰라보거나 길을 잃어도 주위에서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건 정말 좋은 대처법”이라고 칭찬했다. 실제로 독일의 치매 요양병원에선 이전에 환자가 살던 가구나 장식을 병실로 그대로 옮겨와 배치한다. 환자가 편안한 심신 상태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게 증상을 완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호선 교수
하지만 이를 형벌처럼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현재 국내에선 65세 이상 인구의 10% 안팎이 치매에 시달리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 교수는 “특히 75세 이후 신체기능이 떨어지며 치매가 찾아올 확률이 높아진다”며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자신을 잃어가는’ 환자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치매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이 시기에 맞지 않게 혼란스럽게 뒤섞였다. 멀쩡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진 환자가 가족을 송두리째 몰라보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이 교수는 “주위 사람은 알아보면서 가족만 몰라본다는 것도 실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오히려 질환 초기에 특정인물에게만 공격성을 드러내는 사례는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후반부에 성칠이 자신의 딸에게 ‘네가 내 딸이로구나. 기억을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을 최고로 꼽았다. 이 교수는 “기억의 일부가 지워진다고 사고능력마저 다 잃는 건 아니다”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주변의 노력이 환자에게 가장 큰 힘이 된다”고 조언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