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데뷔 꿈 버려라… 일단 그려야 만화가다”
14일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열린 ‘청년드림 도시락 토크’ 행사에 참석한 이종범 웹툰 작가(왼쪽)가 만화 전공 대학생들에게 자신만의 노하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작가는 “만화가에게 필요한 재능을 논하기 전에 자신이 가진 소질과 재능부터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인기 웹툰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33)가 14일 한국 만화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가 마련한 ‘청년드림 도시락 토크’ 행사에서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만화가를 꿈꾸는 만화 전공 대학생들이 참가했다. 창밖에 내리는, 새싹의 성장을 돕는 봄비처럼 선배 작가의 친절한 조언이 예비 만화가들의 꿈을 무럭무럭 키워 주는 듯했다.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이 작가는 2009년 웹툰 ‘투자의 여왕’으로 데뷔했다. 그는 2011년부터 심리학을 소재로 한 ‘닥터 프로스트’를 연재하며 2012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닥터 프로스트’는 최근 드라마로 제작되며 인기를 모았다.
작가가 꼽은 고충은 ‘마감의 고통’이다. 그는 “웹툰 시작을 10번 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마감을 지켜 이야기를 끝낼 때 크게 성장할 수 있다”며 “경험은 끝에 쌓인다는 것을 명심해 달라”고 말했다. 데뷔작 스토리를 방대하게 구상해 100회가 지나도록 못 끝내는 것보다 6∼10개월 안에 완결 지을 분량으로 짜야 한단다.
빠른 성공도 권하지 않았다. 그는 “운이 좋아서 데뷔작이 크게 성공했다면 정작 작가는 자신이 무얼 잘해서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고해상도로 파악하는 노력을 할 때 길게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글과 그림 모두 소질이 없었는데 고해상도로 들여다보니 낯을 안 가리고 남과 쉽게 친해지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을 만나며 자문과 취재에 기반한 만화를 그릴 수 있었다”고 했다.
한 참석자는 “마감에 쫓기면 대체 언제 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 작가는 “한창 연재할 땐 일주일 내내 하루 20시간씩 일한다. 마감 중에 앉은 채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체력을 강조했다. 이 작가는 “그림 실력은 무조건 는다는 믿음을 갖고 체력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쉴 때도 꼭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겉으로 자유롭고 화려해 보이는 웹툰 작가들의 고충도 들려줬다. 마감 압박으로 체력적 심리적으로 한계에 달했을 때 웹툰에 달린 악플까지 본다면 심각할 경우 공황발작 증세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단다.
이날 행사에는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김도희(21) 이민진(21) 이주희 씨(23),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이용경(22) 조은별(22) 김태희 씨(19)가 참석했고 남성으로는 유일하게 세종대 김현준 씨(19)가 함께했다.
김도희 씨는 “만화가가 되려고 하는 이유를 분명히 잡아야 회의감을 느끼지 않고 더욱더 열심히 할 수 있단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내가 만화가란 직업을 얼마나 동경하고 사랑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