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페루서 李총리 사의 수용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 느낀다” 野엔 “민생법안 처리 협조를” 압박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 표명이 국내에 알려진 21일 0시 무렵 박근혜 대통령은 페루 국빈 방문 공식 행사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총리의 사의 표명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총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면서 여당마저 등을 돌리자 박 대통령도 시간을 끌 수 없다고 보고 정면 돌파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오얀타 우말라 페루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이 총리의 사의 표명과 관련해 세 문단으로 압축된 성명을 냈다.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박 대통령은 “검찰은 정치 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해 모든 것을 명백히 밝혀 주기 바란다”고 했다. ‘성완종 게이트’를 박근혜 정부의 도덕성 시비에서 여야를 아우르는 정치권 전체의 적폐 문제로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이어 박 대통령은 “지금 경제 살리기가 무엇보다 시급한 만큼 국회에서도 민생법안 처리에 협조해 달라”고 했다. 형식은 당부였지만 내용은 야당에 대한 압박이었다. ‘성완종 게이트’는 검찰에 맡기고 여야는 정쟁에서 벗어나 국회 본연의 일에 충실해 달라며 여론에 호소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27일 이 총리의 사표를 수리할 예정이다. 일단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대행체제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당분간 국정 공백이 불가피해 보인다. 후임 총리 인선부터 국회 인사청문회 및 인준 절차를 마칠 때까지는 한 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업무 능력도 능력이지만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후보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다.
4·29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더욱 가파르게 대치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 총리의) 고뇌에 찬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야당이) 2, 3일을 참지 못하고 너무 과하게 정쟁으로 몬 것은 안타깝다”고 날을 세웠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 총리 사퇴는 공정한 수사의 시작이다. 이번 사건은 박근혜 정권의 도덕성과 정당성이 걸린 정권 차원의 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리마=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