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성완종 회장과 알고 지내긴 했지만 친분은 없다”라는 이완구 국무총리의 해명은 전 운전기사 윤모 씨의 증언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이 총리 측 비서관이 윤 씨에게 전화를 걸어 “형님 그날(2013년 4월 4일) 우리 기억나요. (홍성) 도청 (일정) 끝나고 청양사무소 들렀었죠?”라고 물으며 부여 사무소를 들르지 않은 것처럼 착각을 유도하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 비서관은 윤 씨와의 통화 내용을 녹음해 파일을 공개했다. 그러나 녹음은 되레 이 총리 측이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듯한 인상만을 남겼다.
진실은 스마트 기기에…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를 “예측하기 어려운 방법을 동원해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예측하기 어려운 방법’은 뜻밖의 스마트 기기 기록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 기기가 성완종 게이트의 조역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여의도 정치인들은 요즘 사람을 만날 때 “스마트폰 안 가져오는 조건으로 만나자”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스마트 기기의 영향력은 정치권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상당수 기업이 회의를 할 때 스마트폰 소지를 금지한다. 표면적 이유는 스마트폰에 정신 파느라 회의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이라지만 민감한 발언이 새나가는 것을 막는 보안상 목적도 크다.
얼마 전 서울 한 중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학급반장 선거에 출마한 여학생이 남학생을 복도로 불러내 “뽀뽀해 줄 테니 반장 출마 포기하라”고 했다. 깜짝 놀란 남학생이 여학생을 밀치는 바람에 여학생이 넘어졌다. 겁이 난 남학생은 학교폭력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CCTV부터 찾았다고 한다.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했다는 말도 충격이지만 어린 청소년들이 감시사회에 적응하고 감시받는 걸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도 놀랍긴 마찬가지다.
불신이 스마트폰 의존 조장
성완종 게이트에서 스마트 기기는 진실을 규명해 주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알게 모르게 스마트 기기의 포로가 되고 있음도 드러났다. 스마트폰은 인간사회의 불신을 먹고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