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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의 사회탐구]스마트 기기가 복원하는 성완종 게이트

입력 | 2015-04-22 03:00:00


정성희 논설위원

‘성완종 게이트’의 출발은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한 당일 아침 경향신문과 통화한 녹음 파일이다. 이 신문은 이 녹음 파일을 바탕으로 나흘 동안 특종을 이어갔다. 흥미로운 대목은 성 회장이 기자와 통화하면서 “녹음하라”고 주문했다는 점이다. 기자가 스마트폰으로 녹음한 녹음 파일의 가공할 파급력은 우리가 목도하는 그대로다.

“성완종 회장과 알고 지내긴 했지만 친분은 없다”라는 이완구 국무총리의 해명은 전 운전기사 윤모 씨의 증언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이 총리 측 비서관이 윤 씨에게 전화를 걸어 “형님 그날(2013년 4월 4일) 우리 기억나요. (홍성) 도청 (일정) 끝나고 청양사무소 들렀었죠?”라고 물으며 부여 사무소를 들르지 않은 것처럼 착각을 유도하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 비서관은 윤 씨와의 통화 내용을 녹음해 파일을 공개했다. 그러나 녹음은 되레 이 총리 측이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듯한 인상만을 남겼다.

진실은 스마트 기기에…

성완종 게이트의 전개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스마트폰 하이패스 폐쇄회로(CC)TV 내비게이션 같은 스마트 기기의 존재와 부딪히게 된다. 성 회장과 이 총리가 만났는지는 고속도로 하이패스, 자동차 블랙박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기록 등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성 회장을 잘 모른다는 ‘성완종 리스트’ 주인공들의 발언은 휴대전화에 남은 통화기록으로 무참하게 깨졌다.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를 “예측하기 어려운 방법을 동원해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예측하기 어려운 방법’은 뜻밖의 스마트 기기 기록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 기기가 성완종 게이트의 조역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여의도 정치인들은 요즘 사람을 만날 때 “스마트폰 안 가져오는 조건으로 만나자”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스마트 기기의 영향력은 정치권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상당수 기업이 회의를 할 때 스마트폰 소지를 금지한다. 표면적 이유는 스마트폰에 정신 파느라 회의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이라지만 민감한 발언이 새나가는 것을 막는 보안상 목적도 크다.

얼마 전 서울 한 중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학급반장 선거에 출마한 여학생이 남학생을 복도로 불러내 “뽀뽀해 줄 테니 반장 출마 포기하라”고 했다. 깜짝 놀란 남학생이 여학생을 밀치는 바람에 여학생이 넘어졌다. 겁이 난 남학생은 학교폭력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CCTV부터 찾았다고 한다.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했다는 말도 충격이지만 어린 청소년들이 감시사회에 적응하고 감시받는 걸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도 놀랍긴 마찬가지다.

불신이 스마트폰 의존 조장

조지 오웰은 개개인의 생활을 통제 감시하는 거대 권력기구로 빅브러더를 말했는데 현대판 빅브러더는 스마트폰이다. CCTV만 해도 설치된 곳이 제한적이지만 스마트폰은 소유자가 어디를 갔는지 동선이 그대로 드러나고 투시(카메라)와 녹음, 검색이 동시에 가능해 소유자의 도플갱어라 할 만하다. 그래서 혹자는 스마트폰이 역사상 최초로 개인화한 인격을 가진 기기라고 말한다. 두 명이 스마트폰을 들고 만나면 4명이 만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성완종 게이트에서 스마트 기기는 진실을 규명해 주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알게 모르게 스마트 기기의 포로가 되고 있음도 드러났다. 스마트폰은 인간사회의 불신을 먹고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