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원자력협정 타결] ‘핵 재처리 첫단계 진입’ 의미는
○ 순수 플루토늄 추출 안 되는 파이로프로세싱
그간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는 ‘퓨렉스(PUREX)’로 불리는 습식 재처리 기술이 사용됐다. 사용후 핵연료를 질산 등으로 녹여 액체로 만든 다음 핵연료만 뽑아낸다.
현재 프랑스는 습식 재처리를 이용해 사용후 핵연료에서 순수 플루토늄을 뽑아낸 뒤 농축우라늄과 섞어 원자력발전소의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 역시 습식 재처리 기술과 시설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고압처리 시설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 아직 활용은 하지 못하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핵연료를 녹이지 않는 건식 재처리라고 불린다. 500∼650도의 고온에서 전기분해를 이용해 사용후 핵연료를 금속으로 환원한 뒤 우라늄 등 핵물질을 분리해낸다. 이때 플루토늄도 생성되지만 순수 플루토늄만 따로 추출할 수 없고 우라늄, 마이너엑트나이드(MA) 등이 한데 섞인 핵연료가 나온다. 이 때문에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 얻은 핵연료로는 핵무기를 개발할 수 없다.
○ 일부 과정만 허용, 핵연료 만들지는 못해
이번 협정에서는 파이로프로세싱 전체 과정 중에서도 첫 단계에 해당하는 전해환원 기술에 대한 장기 동의를 얻었다. 이 단계에서는 사용후 핵연료에서 산소를 떼어내고 금속으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송기찬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연료주기기술개발본부장은 “후반부 공정에 대해서는 한국과 미국이 공동 연구를 진행한 뒤 그 결과를 평가해 2020년 이후 파이로프로세싱 전체 과정에 대한 추진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원자력연구원에는 전해환원 시설인 ‘ACPF’가 설치돼 있어 앞으로 이를 통해 파이로프로세싱의 전해환원 기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 계획이다. 이 시험시설은 사용후 핵연료를 연간 0.2t 처리할 수 있다.
향후 파이로프로세싱 전 과정에 대한 장기 동의를 얻을 경우 국내 핵연료 공급에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사용후 핵연료는 내년 고리 원전을 시작으로 월성(2018년), 울진(2019년), 영광(2023년) 등 몇년 안에 포화 상태에 이른다. 파이로프로세싱 전 과정을 통해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방사성 폐기물이 100분의 1로 줄어든다.
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하면 같은 양의 핵연료로 지금보다 몇십 배 더 많은 전기를 얻을 수 있다. 또 골칫덩이인 핵폐기물을 값진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규제에 묶여 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많은 비용을 들여 끌어안고 있는 셈이었던 만큼 폐기물이 줄어드는 효과도 톡톡히 누릴 수 있다.
:: 파이로프로세싱 ::
한 번 썼던 핵연료를 이용해 다시 전기를 만드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 파이로프로세싱을 이용하면 사용후 핵연료를 몇 번이고 재활용해 핵연료를 만들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 전해환원(電解還元) ::
사용후핵연료에서 스트론튬, 세슘처럼 고열을 내는 핵종을 제거하기 위해 전기분해하는 과정. 우라늄, 플루토늄 등이 한데 섞여 있는 핵연료를 얻기 위한 첫 단계다.
:: 조사후 시험 ::
원자로에 핵연료를 넣어 중성자를 조사(照射)한 뒤 핵연료가 제대로 연소됐는지 확인하는 시험.
신선미 동아사이언스 기자 vami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