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펜스
하지만 서울에서는 이런 광경을 발견하는 일이 흔치 않다. 아마 햇볕을 대하는 동서양 간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서 그렇지 않을까(사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나는 양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일단 서울에선 편안히 드러누울 수 있는 잔디밭을 찾기가 어렵다. 독서하기 좋은 테라스를 찾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환경 탓만은 아닌 것 같다. 독서에 대한 한국과 유럽의 태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을 본다는 건 기본적으로 ‘홀로 하는 행위’다. 한국인과 유럽인의 독서문화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개인보다 단체를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와 달리 유럽에서는 홀로 자유시간을 보내는 것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다. 서유럽의 ‘고독의 문화’는 한국보다 훨씬 강한 편. 홀로 식사하는 것을 즐기듯 자기만의 시간에 습관적으로 책을 보는 것도 유럽인다운 생활방식이다. 유럽 사람들은 퇴근길이나 주말에 규칙적으로 동네 서점에 들러 15∼30분, 길게는 1시간씩 책을 구경하곤 한다. ‘견물생심’이라고 책을 충동 구매하는 습관이 밴 사람들도 꽤 있을 정도다.
유럽에서 책은 일상생활의 중요 활력소다. 프랑스나 독일 등지에서는 친구들끼리도 문학을 놓고 수다를 많이 떠는 편. 대화 주제로 책이 등장하는 것도 다반사다. 성탄절 선물로도 책은 최고의 선물 중 하나다. 한국에 와 출판사 ‘열린책들’에 입사한 이후 나는 한국 독자들의 취향 그리고 국내 도서시장의 특징 등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입사한 지 어느덧 6년이 지난 지금, 그간 아침마다 2200번 버스를 타며 넘치는 승객들로 꼼짝달싹하기 힘든 출근길에 매번 사색에 잠길 기회가 충분했음에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다만 현재 한국과 유럽 출판계를 비교해 보자면 가장 두드러진 것은 ‘차이점’이 아니라 ‘공통점’이다. 바로 책을 만드는 일은 아름다운 것이며, 아름다운 만큼 또 어렵다는 사실. 한국도, 유럽도 책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은 절대 좋은 출판인이 될 수 없다. 편집자들과 문학 번역가들은 그들이 일에 쏟아 붓는 애정 그리고 그들이 지닌 엄청난 언어적, 문학적 재능을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한국이든 유럽이든 신비롭게도 책에 실리는 저자 사진들은 하나같이 저자가 우아하게 턱을 바치고 있거나 얼굴에 손을 대고 있는 모습이라는 사실까지도!
비슷한 점은 더 있다. 베스트셀러는 대개 책을 1년에 한 권밖에 안 사는 사람들이 구매하는 책이라는 점. 문학성이 아주 뛰어난 작품은 인기를 얻기는 사실 힘들다는 점. 재미를 느끼는 데에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는 점. 출판은 비즈니스이기도 하니 당장 이득을 말해주는 ‘숫자’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 그래서 정말 출판하고 싶은 책이라도 손익계산을 따져보고는 주저하게 될 때도 있다는 점….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도, 유럽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발행인의 딜레마’다.
매출에만 집착하면 사랑하는 책을 파는 것보다 팔리는 책을 사랑하게 되는 법. 이는 아마 전 세계 출판인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책 사랑’과 ‘책 사업’ 사이의 그 불가능해 보이는 균형을 끊임없이, 열광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것. 어려운 만큼 대단히 매혹적인 도전이다. 당신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벨기에 출신인 필자(39)는 벨기에 명문 루뱅대 법학과와 브뤼셀 KUB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다 현재 출판사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으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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